세계사진가탐구

[스크랩] [4부 후기 현대사진의 시작 - 뉴 웨이브 사진가들]

kwendol 2008. 10. 13. 11:10


4부 후기 현대사진의 시작 - 뉴 웨이브 사진가들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사진을 가장 강력한 우리 시대의 표현 매체로 자리 잡은 작가들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 사진이 뭐길래 - 신디 셔먼 Cindy Sherman(1954~)

    1975년 로버트 롱고, 신디 셔먼, 낸시 드와이어, 찰스 크로프트는 함께 버팔로 외각 허름한 얼음공장을 임대하여 공동 작업

    실을 꾸미고 함께 작업한다. 이 공간이 유명한 버팔로 홀월즈이다. 셔먼은 이곳에서 다양한 예술 장르를 실험, 앞으로 펼칠

    작가의 꿈을 준비한다. 1976년 예술계 첫 진입한 셔먼은 처음엔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홀월즈에서 3년 동안 작업에 몰두한

    셔먼은 마침내 1979년 홀월즈와 우드 스탁에서 그간의 작품을 선보여 대단한 호평을 받는다.

    1980년 <무제, 필름스틸>이 미국 전역을 강타. 단번의 화제의 중심에 올라 모든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그 흔한 표현성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사진이 강력하게 부상한 것은 전적으로 시대성 반영과 여성이기 때문이다.

    그 후 20년 동안 셔먼이 현대미술 중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옥토버라는 저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셔먼의 작품은 연출한 사진이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단연 연출 방식이다. 그녀의 프러젝트는  화장과 소품이 절대적인 비중

    을 차지하고, 그 다음이 스테이지 구성이다. 화장은 가히 완벽하다는 소릴 듣는다. 셔먼이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사진의

    대표성을 가졌던 것도 사진에 나타난 사진적 방법론이, 그리고 사진의 개념화 방식이 그들과 연계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유일하게 이론적으로 끌어들이고, 작품과 연계한 것이 1990년에 제작한 <역사 인물화Untitled

    History Portraits>시리즈. 미술사에서 평가하는 인물화에 능한 남성 작가들의 작품에 나타난 여성의 이미지를 도용한 작품

    이다. 정교한 구도, 완벽한 조명, 화려한 색감을 통해 인물화의 참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신디 셔먼의 사진에서 우리가 이성적으로 알 수 있는것은 진정 우상화하지 않는 지극히 인간적 체취의 초상이었다.


▶ 잘 봐. 네 곁에 누가 있는지 - 바바라 크루거 Barbara Kruger(1954~)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Your body is a battleground>(1989). 1989년 4월 워싱턴 DC에서 벌어졌던 낙태법 철회에 대한 대

    규모 여성 시위에 참가했던 바바라 크루거가 낙태에 권리가 여성의 것임에도, 배속의 태아를 죽이고 살리는 일이 남성이 결

    정한다는 사실에 절망과 분도를 느끼면서 나타낸 사진이다. 크루거는 페미니스트로 강직한 페니미즘 아티스트로 현대 사진

    의 큰 기둥으로 자리. 늘 강렬한 언어와 이를 지지할 이미지를 결합하여 우리시대 여성문제를 폭로하고 있다. 강력한 메세지

    를 통해 대중에게 접근하고, 그 접근을 통해서 권력을 저항하려는 의지를 보였던 여성 사진가이다. 권력이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우리 곁에서 "원격 조정에 의해 교묘히 작동하는 것"임을 경고했던 사진가이다.

    '최후의 언어는 이미지'라고 생각한 그녀는 사진 못지 않게 텍스트를 중요시 했고 그것이 어떤 효과를 가지는가에 대해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오늘날 사진이 언어와 결합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효과를 가장 강력하게 실증적으

    로 보여준 아티스트가 바바라 크루거였다.


▶ 굿바이 파라다이스 - 샌디 스코글런드 Sandy Skoglund(1946~)

    샌디 스코글런드는 1980년에 <방사성 고양이Radioactive Cats>를 시작으로 일련의 설치 작품을 제작하는데 단 한번도 환

    경문제, 생태학적 문제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방사성 고양이에 뒤이어 제작한 <금붕어 복수Revenge of The Goldfich>또

    한 환경에 대한 심각성을 설치 작품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녀의 작품은 미래적 시각을 투영한 여느 작가들보다 앞서 미래의

    인간적 삶의 부조화, 모순, 문제점들을 작품을 통해 예견하고 있다.

    평론가들은 샌디 스코글런드의 작품을 인스톨레이션 포토. 즉 설치사진으로 분류한다.

    그녀의 작품은 무엇보다도 친숙한 이미지, 볼거리가 있는 작품, 특히 상상적 무대에 연출한 하구의 세계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허구의 공간에서 그녀가 오브제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자연 질서와 생명력에 대한 강조이다.

    샌디 스코글런드의 작품은 최종적으로 사진이다. 전시가 끝나면 무대는 사라지고 사진이 그 모대의 모습을 대신한다. 작품

    의 최종적 이미지가 사진이라는 것은 사진이 여전히 증거 수단, 실제를 증거하는 징표라는 뜻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환자와 간호원>(1982). 생에 대한 인간적 욕구를 교묘히 이용하는 현대 의학의 비정성을 고발하는 작

    품이다. <양치식물>(1980), <세균은 도처에 있다>(1984)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 현대인의 지나친 다이어트, 지나친 '자연식

    품'애호를 부정적으로 묘사한다. 최근작 <웨딩>(1994)은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영화처럼 결혼이라는 것이 화려함과 달리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성스러움 대신 얼마나 형식적이고 인공적인지를 보여주려 한 작품이다. 샌디 스코글런드는 매우 대

    중적인 작가. 그의 사진은 건전하고 도덕적, 삶을 이롭게 하는 메시지를 담고있으며  작품의 형식이 재밌고 볼거리가 많다.


▶ 화끈함과 쓸쓸함에 대하여 - 낸 골딘 Nan Goldin(1953~)

    낸 골딘은 옛날 학교 친구 데이비드 암스트롱과 동거를 시작, 데이비드가 마약중독이로 어디론가 사라지자 성적 파트너였던

    샤론을 만나 또다른 삶을 꾸려나간다. 이때의 이야기를 한 권의 사진집으로 세상에 드러내는데 그것이 그녀의 대표작으로

    자리하는 1986년에 출간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 성적 종속의 발라드]이다.

    그녀는 언니의 자살과 어린 나이에 성을 경험 하면서 가정과 사회로부터 일탈하기 사작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진정 삶의

    진실이란 무엇일까?"에 의문을 가지며, 그것들을 이미지를 통해 찾아내려는 욕망을 지폈다. 생의 기록으로 사진, 삶의 증거

    로서 사진, 세상과 마주한 한 인간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사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낸 골딘은 점점 더 노골적

    인 자신의 삶을 재현하기 시작. 마침내 그녀는 동성애 문화가 이제 막 개화할 무렵 그 속으로 아주 깊숙히 빠져든다. 18세의

    어린 나이에 그녀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발견하고,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사실도 알았다.

    낸 골딘의 사진은 감추고 싶은 비밀이 한 순간에 드러나는 사진 일기이다. 지극히 문란한 성과 마약에 취한 삶, 그녀의 어두

    운 삶을 그렸던 [성적 종속의 발라드]는 그 시대 솔직한 마이너리티 삶의 모습을 비춘다. 또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이질

    적 느낌을, 서로 함께 할 수 없는 배타적 인간관계를 그린다.

    하나둘씩 에이즈에 걸려 죽어 가는 친구들 때문에 그녀는 마약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도 마약중독으로 병원에 입

    원. 이때 찍은 사진들이 1994년 [ALL MY SELF]라는 제목으로 발표한다. 그리고 최근작 [그대의 거울이고 싶다I'LL BE

    YOUR MIRROR]는 그녀가 살아온 시대의 단층과, 그녀의 삶 한가운데서 일어났던 의식의 흐름들이 뒤엉켜 흐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 엽기의 원조라 불러다오 - 조엘 피터 위트킨 Joel Peter Witkin(1939~)

    조엘 피터 위트킨은 현대 사진에서 가장 엽기적인 이미지를 갖고 우리곁에 찾아오는 사진가이다. 그의 사진은 전적으로 삶

    의 체험이며, 전부가 자신이 만난 이미지들의 구체화이다. 그런 그가 사진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은 1956년 뉴욕 근대 미술

    관(MoMA)의 디렉터 에드워드 스타이캔Edward Steichen의 눈에 들면서부터이다.

    위트킨의 사진을 통해서 삶과 죽음을 조화롭게 표현하려 했다. 그의 사진에서 특이한 점은 선과 악, 삶과 죽음의 강조. 희생

    적이고 엽기적이고 드라마틱한 방법으로 재현한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 <샴 형제>(1988)에서는 두 존재의 결합, 즉 육체의 융합 중에서 가장 중요한 머리가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쌍둥이들은 긍정과 부정의 존재였다는 것을 말한다. <홀로코스트 초상Porttait of Holocaust>(1982), <산수공부Counting

    Lesson in Purgatory>(1982)는 금지된 것과 타부에 지속적으로 접근했으며, 순수한 희생과 비극의 모성까지 창조하기 위

    해 죽은 태아까지 가져온다. 위트킨은 부정의 형상을 위해 필름에 스크레치하고, 조각성을 가미하여 육체를 더욱 기형화 한

    다. 그의 예술 목표는 인간 존재를 위한 우리의 자각을 강조. 그의 사진 작업은 자아의 발견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자아의

    발견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무의식 세계로 들어가도록 한다. 위트킨이 선택한 기형적 이미지는 바로 우리 현실적인 삶의

    또 다른 모습이다.


▶ 브루클린 익스프레스 - 마이크와 더그 스탄 Mike Doug

    사진작가라기보다는 아티스트에 가깝고, 사진을 이용하면서 한번도 사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스탄형제는 젊은 나이에

    뉴욕 최고의 화랑, 권위의 레오 카스텔리 소속 작가이다. 단숨에 현대사진가의 반열에 올라선 행운아들이다.

    '스탄 형제'하면 맨 먼저 다가오는 것이 예술계에서 좀처럼 보기드문 쌍둥이 작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작업이 늘상

    아름답고 환상적이라는 데 있다. 자유자재로 사진을 이용하여 찢고, 붙이고, 오리고 꿰매서 늘 그들의 전시는 볼거리가 많고

    눈요기할 것이 많아 항상 화젯거리를 몰고 다닌다. 이렇듯 스탄 형제는 뉴욕에서 가장 젊은 나이에 사진 작업으로 주가를 높

    인 작가이고, 작업방식도 전세계적으로 퍼져 나가 메이킹 포토의 전형으로 애용되기도 했다.

    스탄 형제가 뉴욕 예술계에 성공적으로 입성하고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1987년 <휘트니 비엔날레>에 초대되면서 부터이다.

    그들은 초대한 이유는 뉴욕 스턱스 화랑이 전략적으로 스탄 형제의 전시회를 유치했기 때문이다. 이후로 스탄형제의 주가는

    하늘로 치솟았다. 작품은 더욱 역동적이고 화려해졌으며, 여기에 신선함까지 가미했다. 웅장한 스케일과 섬세함, 우아함을

    자랑, 사진을 다양하게 이용. 사진을 누구보다도 미술의 관점에서, 그리고 탈 장르적으로 사용한 작가들이다.

    그들의 주제는 복잡한 현실의 이야기 보다는 감성적이고 성스러운 이야기였고,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보다는 초월적인 신화

    이야기였다. 작품으로 <에수그리스도>, <안내 프랑크>, <모나리자>, <단테>, <렘브란트>, <피카소>등이 있다.

    스탄 형제의 최근작품은 보다 실험적이고 스케일도 커졌다. 테크놀로지를 도입하고 더욱 실험적이 되었다.

    여전히 그들의 작품은 관객을 놀라게 하고 황홀하게 했다.


▶ 섹스, 거짓말 그리고 핫셀블라드 - 로버트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1946~1989)

    "섹스, 거짓말 그리고 핫셀블라드". 평생 로버트 메이플소프에게 따라다녔던 말이다. 섹스는 세상의 전부였고 거짓말은 그가

    가장 싫어했던 것이었으며 핫셀 블라드는 극과 극의세계, 거짓투성이의 더러운 세계에 저항하는 무기였다. 메이플소프는

    밤에 사진을 찍지 않았다. 그의 이미지들은 낮에 찍혀진 사진이다. 낮은 이성이었다. 이성을 통해서 지금까지 누구도 꿈꾸지

    못한, 표현하지 못했던 사회적 금기에 다가섰다.
    에이즈 말기에 요양 치료를 받다가 치료 불능이라는 진단을 받고 그로부터 꼭 두달을 더 살다가 1989년 3월 세상을 떠난 그

    를 세상은 그가 떠나는순간까지, 아니 죽어 땅에 묻하는 순간까지 그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평

    가하는 이유는 한 인간의 삶의 족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것은 확실히 그가 남긴 예술의 흔적 때문이다. 예술안에서 그의

    섹스는 죽음을 초월해 있는 예술적 메커니즘이다. 그가 찍은 사진은 매우 아름답다. 꽃이든 인물이든 그의 사진은 아름답다.

    그래서 죽음은 그에게 늘 아름다운 이미지로 주변에 있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오늘날 현대사진의 신화로 자리한다.

    그의 삶은스토리를 가진 하나의 연출이며, 사진은 삶의 대본으로 나타난 형상이었다.


▶ 뜨거운 것이 좋아 - 안드레 세라노Andres Serrano(1950~)

    안드레 세라노는 혼혈아로 태어나 장차 예술의 이름으로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사회를 향해 저돌적 공격을 감행한 사나이다.

    세라노의 사진은 종교, 죽음, 섹스 이렇게 3가지 주제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오줌 속에 빠트린 화제작 <오줌 속의 예수>(1987)

    성스런 보혈을 AIDS로 감염한 피, 그리고 일용할 양식의 우유를 더러운 정액으로 둔갑시킨 문제작 <체액Fluid 시리즈>

    하잘것 없는 죽음, 전혀 천당갈 수 없는 죽음, 결코 성스럽지 않은 죽음들을 모아 놓은 <시체 공시소>(1991)

    백주 대낮 베란다에서 섹스의 향연을 펼치거나, 늙은이.젊은이를 가리지 않고 향락의 섹스 판을 벌인 <성의 역사>(95~96)

    여인의 몸을 타고 흐르는 선홍빛 붉은 피와 추기경의 붉은 색의 옷은 세속적 성을 갈망하는 강력한 현실감을 비추는 <천당

    과 지옥Heaven and Hell>(1987) 을 선보여사회적 센세이션을 몰고온다.

    세라노의 사진은 무엇보다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맹목적인, 신비주의적인, 제의적인 생각들을 파괴하는 데 있다. 그리고

    삶의 이중성, 생의 부조화를 종교, 죽음, 섹스에서 찾는다. 비도덕적이며 음란하고 불경스럽고 혐오스런 그의 사진속의 디테

    일, 삶의 세부는 현실의 모습이다. 세라노는 가장 저속하고, 가장 아름답지 못한 이야기를 가장 리얼하게 표현한다.

    그의 사진은 늘 예술의 의미를 곰곰히 되씹게 계기가 되곤 한다.


▶ 검은 신 하얀 악마 - 즈벨르투 므데트와Zwelethu Mthethwa(1960~)

    다큐멘터리 사진가 즈벨르투 므데트와는 자신의 조국 남아공을 방문했다가 제작한 <신성한 집>은 3년에 걸쳐서 제3세계를

    새롭게 점령하고 있는 하얀 악마들, 다국적 기업을 앞세운 백인들의 새로운 식민지 정책을 사진으로 담은 것이다.

    1995년부터 <오하네스버그 비엔날레>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그는 현재 남아공과 제3세계를 대표하는 사회주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혹은 인권, 정체성, 환경, 전통문화를 지키려는 대표적인 NGO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2000년

    광주비엔날레 <예술과 인권전>에 초대를 받아 작품을 선보인 적이 있다. 므데트와는 다큐멘터리 사진가에 속하지만 삶의

    진실를 말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인위적 연출도 수용하는 작가. 오히려 철저하게 이용하는 작가라는 점에서 포스트 리얼리즘

    계보에 속하는 작가이다. 그의 사진은 강력한 컬러, 인상적인 조명, 분명한 프레임 워크가 돋보인다.

    므데트와의 사진적 화두는 갈등 상태에 놓인 제3세계 문화적 양태를 바르게 곧추세우는 데 있다. 그가 사진을 통해 강조하

    는 것은 새로운 식민지 문화에 취해 함몰하는 제3세계 국민들의 삶의 구조, 즉 어찌해 볼 수 없이 길들여진 상품의 맛, 달콤

    한 욕망을 꿈꾸는 피폐된 중독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무겁고 어두운 이야기를 므데트와는 되도록 가치 중립적으로

    표현하려 한다. 그의 사진은 결국 정체성 문제로 모아진다. 남아공의 현주소, 사람들의 정체성을 반영한다. 므데트와의 사진

    이 말하듯이 오늘날 식민지 문화는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다. 오히려 의식주를 통해서 점령하고 있는 정신적, 중독적 식민지

    문화 풍경이 문제가 되고있다. 그 점에서 므데트와의 사진은 제3세계 국가, 특히 오늘날 친미적인 국가에서 펼쳐지고 있는

    신식민지 풍경의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 그 유원지에 가고 싶다 - 마틴 파Martin Parr(1952~)

    마틴 파는 영국 출신의 사진가로는 보기 드물게 매그넘 사진가이며 90년대에 들어 세계적인 명성과 함께 팬들을 확보한 사

    진가이다. 그는 인상적인 컬러 사진을 통해서 수많은 팬들을 몰고다닌다. 그의 사진은 전통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취했던

    방법과는 다르다. 접근방식과 표현방식은 매우 현대적이다.  최근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그의 방법론을 추종하는 사진가들이

    많이 나타난다.

    그의 첫번째 작품으로는 <악천후>(1982)가 있다.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 마틴 파는 1983년부터 3년에 걸쳐 뉴 브리튼 리조트를 담은 그 유명한 <마지막 유원지The

    Last Resort>(1983~86)를 내놓는다. 이 작품은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고 수많은 사진가들이 모방하고 싶어 안달하게

    했던 작품이다. 이때부터 매그넘 사진가 중에서 가장 독특하게, 가장 특이한 방식으로 새로운 사진적 방법론을 선보인다.

    마틴 파는 저널은 저널대로, 예술은 예술대로 사진 세계를 획일화 시키지 않는다. 그 결과예술잡지에서도 더 평가받고 사랑

    받는 작가로 태어났다. 그의 사진에 세계가 주목한 것은 1989년 <삶의 비용>이 나타났을 때이다. 그리고 연이어 <하루여행>

    (1989)이 터져 나오자 일약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 새로운 다큐멘터리 사진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출간한

    <작은세계>(1995)까지 포함시킨다면 마틴 파 신드롬이라고 말해도 좋을 현상이 세상에 나타났다. 마틴 파의 컨셉은 지구촌

    문화 환경에 관한 것이다. 1986년의 <마지막 유원지>에서부터 시작하여 1995년 <작은세계>에 이르기까지 그는 변함없이

    우리 시대 사회와 문화를 비판하고 풍자했다.

    마틴 파의 사진은 특별한 이론을 요구하지 않는다. 눈으로 보면 사진의 내용이 읽혀지는 사진이다. 그가 그동안 선보였던 다

    큐멘터리 사진은 너무도 생생하고 현실적이다. 그가 우리 시대 새로운 삶의 리얼리티를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포스트 다

    큐멘터리 사진, 새로운 다큐멘터리 사진의 교과서가 되었다.

 
▶ 네 멋대로 만들어라 - 페드로 마이어Pedro Merer(1935~)

    1995년에 제작된 <진실과 허구Truths & Fictions>사진집은 출간하자마자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무엇보다 충격

    적이었던 것은 이제 다큐멘터리 사진도 디지털이 개입하여 '디지털 다큐멘터리 사진'이란 말이 출현했기 때문이다. 합성에

    의해 만들어진 그의 사진집 <진실과 허구>는 다큐멘터리 사진의 진정성과 함께 이제 우리에게 상상적 다큐멘터리 사진도

    가능해졌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직접 찍은 사진을 포토샵에 올려 특정부분을 지우거나 특정 부분에 새로운 이미지를 병치시

    키는 포토몽타주 기법을 이용한다. 완전 가짜의 이미지가 아니라 진짜 이미지를 갖고 새로운 이미지 창조를 위해 이미지 합

    성 및 변조를 시도한 것이다. 페드로 마이어가 로버트 프랭크의 길을 변조하여 내놓은 작품이 1993년에 발표된 <감정의 위

    기Emotional Crisis>이다. 마이어는 로버트 프랭크의 길을 디지털 포토샵으로 변형시켰다. 그래서 작품의 제작년도는

    '1990/1993'으로 표시되었다. 페드로 마이어의 관심은 사진으로 찍을 수 없고, 사진으로 만들어질 수도 없는 '꿈'과 '기억'을

    표현하는데 있었다. 사진은 보이지 않는것, 욕망, 감정 따위를 찍을 수 없고, 뿐만 아니라 지나간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기록할 수도 없다는 통설을 깨고 싶었다. 마이어는 이런 것들을 컴퓨터 포토샵을 이용해 극복하려 했다. 그는 자신이 새롭게

    창조한 다큐멘터리 사진을 '픽션 다큐멘터리 사진Fiction Documentary Photography'으로 불렀다.

    오늘의 이미지는 상당부분 즐기는 것이고, 감각되는 것이고, 활용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점에서 페드로 마이어의

    디지털 다큐멘터리 사진은 디지털 시대 자율성의 극대화였다.

 

 

 

 

출처 : 사진모임 2008
글쓴이 : 백수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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