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진가탐구

[스크랩] [3부 현대사진의 시작 - 신화적 사진가들]

kwendol 2008. 10. 13. 11:09


    3부 현대사진의 시작 - 신화적 사진가들

  -2차 세계대전부터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 직전까지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신화적 사진가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 영원한 아웃사이더의 눈 - 로버트 프랭크 Robert Frank(1924~)

    로버트 프랭크는

    1924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난다.

    1942년 바젤에서 사진을, 취리히에서 대형카메라와 스튜디오 조명을 배운다.

    1943년 ~44년까지 취리히 글로리아 영화사에서 사진가로서 일했으며

    1946년 취리히 거리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1947년 미국으로 이주 패션광고 및 광고사진을 찍었고 틈틈히 프리랜서로 일하기도 했다.

    1948년 파리에서 훗날 [미국인] 출간을 도울 로베르델피를 만나고 그의 아내 매리를 만난다.

    1953년 워커에반스를 만나 구겐하임 지원금을 신청해보라는 말을 듣고 제안서를 제출한다.

    1955년 4월 제안서가 받아들여져 미국인이 아니면서 그것도 2년씩이나 지원금을 받는 영광을 안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1956년 2년동안 미국을 횡단하며 사진을 찍는다.

    ※ 그때 찍은 사진이 그 유명한 <미국인The Americans>이다.

    <미국인>사진은 입자가 거칠고 노출, 구도, 포커스를 제대로 맞추어 찍는게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형식에 세계가

    놀라고 혁명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런것들이 오히려 전통적인 사진보다 더 역동적이고, 더 솔직하고, 더 현대적인 모습으

    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1958년 이 중 88점을 골라 [미국인]이라는 제목으로파리에서 출간을 해 큰 반응을 일으킨다.

    사진의 역사는 로버트 프랭크를 현대사진의 아버지라고 말한다.

    그에 의해 현대사진의 방법론이 시작됐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현대사진의 메신저였다.

    그 시대 그 누구도 미국을 그렇게 바라보지도, 다가서지도 표현하지도 못했다. 분명 그의 사진은 미국에 대해 냉정하고 어

    둡게 표현하고 있었다.

    1958년 사진에서 조금씩 멀어진 로버트 프랭크는 8미리 영화제작에 몰두하게된다.

    1960년 거처를 캐나다로 옮기고 외동딸 안드레아가 사고로 죽자 다시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그의 사진은 오로지

    가족이야기로 한정한다.

    1980년대 학생들을 가르치며 다양한 형식 실험을 시도한다.

    1986년 대규모 순회회고전을 개최. 전시와 함께 출간된 사진집 [Moving Out]은 그의 50년 사진세계가 담겨져 있다.

 

▶ 뉴욕, 뉴욕, 뉴욕 - 윌리엄 클라인 William Klein(1928~)

    윌리엄 클라인은 로버트 프랭크와 더불어 현대사진의 선각자로 알려졌다.

    그의 사진은 강력한 클로즈업, 과감한 앵글, 거친입자, 블러, 구도무시, 노출무시, 포커스무시, 입자무시 등 정통적인 사진의

    규범을 모두 무시했다.  그의 스타일은 다양한 구도, 다양한 앵글, 다양한 화각을 구사.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다.

    뉴욕을, 미국인을 사랑했으며, 자유롭게, 느낌 그대로 그 어떤 제도와 미학과 형식에 구애받음 없이 시대를 본 그대로를 카

    메라에 담았다. 그의 작품이 훗날까지 현대사진의 돌파구, 새로운 시대, 새로운 어법으로써 젊은 세대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친 것도 바로 그러한 선구자적 작가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1956년 봄, 클라인은 유명한 영화제작자, 감독, 작가인 크리스 마커Chris Marker가 오너로 있는 프랑스 출판사 슐 편집회사

    를 알게되었다. 그의 도움으로 클라인의 뉴욕은 마침내 1956년 가을[Life Is Good and Good for You in New York :

    William Klein Trance Witness Revels]이란 아주 긴 제목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책은 그해 나다르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58년에는 로마에서 찍은 사진을 갖고 사진집[로마]1958~59 를 출간했으며 이후에도 [모스크바]1964,

    [도쿄]1964 라는 사진집을 출간했다.

 

▶ 그 해 여름은 뜨거웠네 - 게리 위노그랜드 Garry Winogrand(1928~1984)

    게리 위노그랜드는 1960~70년대를 격정적으로 살았던 사진가. 현대사진의 대표적 인물이다.

    1946~47년 공군에 복무하면서 사진에 눈을 떴으며 본격적인 사진은 1947년 콜롬비아 대학에서 시작했다.

    1951년 뉴욕 뉴스쿨(지금의 파슨스 예술대학)에서 사진인생으로 잡는다.

    그가 당시 영향을 받은 사람은 워커 에반스와 까르띠에 브레송이었다. 그들의 영향을 받아 찍은 사진들이 1960년에 처음으

    로 뉴욕 이미지갤러리에서 전시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포토저널리즘 시각으로 전환하는데 1962년 쿠바 미사

    일 위기를 촬영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그는 사진과 사회에 몰두하다가 곧 일상으로 돌아와 삶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어 <뉴욕

    동물원>1963, <코니아일랜드 식물원>1964, <동물들>1969을 찍는다. 이 프로젝트를 시행하면서 그는 확연하게 순수사진의

    의미를 깨닫는다. 게리 위노그랜드는 단 한차례도 받기 힘들다는 구겐하임 지원금을 3차례(1964, 1969, 1979)나 받았고 뉴

    욕근대미술관 사진전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다.

    1975년 <여성은 아름답다>를 발표, 1977년 <여론>이란 제묵으로 전시를 가졌다.

 

▶ 내 그림자는 밟지마 - 리 프리드랜더 Lee Friedlander(1934~)

    리 프리드랜더는 1960년대, 1970년대를 풍미했던 세계적인 사진가. 평생을 35mm 소형 카메라만 사용했고, 흑백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사진가이다. 주제에 있어서는 현대성에 천착했던 사진가였지만 결코 낭만적인 에스프리를 버리지 않았다.

    그의 사진에서는 자기만의 독특한 이미지와 언어를 통해서 세상을 말했다. 사진에 깊게 배인 절망과 암을함의 이미지들은

    그가 바라지 않았던 현실, 꼭 그 만큼의 무게로 표현했던 세상속의 이야기였다.

    리 프리드랜더는 1948년 14살 때 처음 사진을 찍기 시작해 예술학교에서 짧게 사진을 공부한 후 1956년 뉴욕에 정착하여 재

    즈에 심취한다. 그 전문가적인 취미를 바탕으로 음반 자켓 사진가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직접 공연에 참가 하기도 했다. 리

    프리드랜더의 사진은 이렇게 음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사진에 대해 새로운 모습의 다큐멘터리 사진이

    라고 했다.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사진의 모습을 바꾸어 나가 자신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교과서적인 역사성을 더듬기도

    하고, 그때의 뜨거웠던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의 결과를 반추하는 역사 반영적인 작업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는 처음으로 사

    진에 문학적 감수성과 깊이를 새겨 넣은 사진가이기도 하다. 1960년, 1961년, 1977년 세번에 걸쳐 유명한 구겐하임 지원을

    받았으며 또 두번에 걸쳐 국가예술기금을 받았다. 또한 평생 단 한차례도 기회를 잡기 힘들다는 뉴욕근대미술관에서의 개인

    전을 세차례에 걸쳐 초대를 받았던 사진가이다.

 

▶ 조형처럼 살다가 조형처럼 떠난 사람 - 해리 켈라한 Harry Callahan(1912~1999)

    해리 켈라한은 위대한 조형사진가이자 가장 위대했던 사진교육자의 한사람이다. 그는 20세기를 살아온 사진가 중에서 가장

    가정적이었으며 가장 미국적인 사진가라고 말해진다. 그는 훌륭한 교육자였고 반평생 사진에 헌신하여 훌륭한 제자들을 많

    이 배출했다. 그리고 형식주의 사진의 대가, 새로운 조형의식을 추구했던 현대사진의 신 조형주의자, 최고의 조형사진가로

    도 말해진다.

    ※ 그의 사진세계는 바우하우스정신, 부단한 실헙정신으로 만들어진 사진. 개인적인 삶의 태도와 자세로 만들어진 사진으로

    구분한다.

    ※ 그리고 켈라한의 사진은 초기, 중기, 말기 각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초기사진은 1940~50년에 나타났던 조형사진이다.

    삶으로부터 미적인 인식을 심는 각양의 조형요소들 특히 조형의 근간인 L(light 빛), C(color 색), D(design 구성)를 이용해

    자연미, 인공미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1960~70년대에 들어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새로운 환경이 사진에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그러한 환경적 요인이 사진의 모습을 바꿔나갔다. 그리고 컬러사진을 본격적으

    로 제작하기 시작했다.

    1980~90년대가 되며 켈라한의 사진은 뒷전으로 물러앉는다.

    점차 세계를 여행하면서 꺠달았던 자연과 인간의 질서들, 그 속에 내려앉은 빛과 색과 형상들의 조화로움을 우주적으로 표

    현하기 시작한다. 조형이 마침내 자연속으로 녹아들었다.

 

▶ 사랑에 속고 주먹에 울고 - 브루스 데이빗슨 Bruce Davidson(1933~)

    1960~70년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매그넘 회원인 브루스 데이빗슨. 데이빗슨하면 시적인 감성과 연민이 배어나오는 사진가

    로 유명하다. 1967년부터 2년동안 찍었던 <동100번가East 100th street>와 1970년 뉴욕근대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고 그는

    사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브루스 데이빗슨은 허물어져 가는 집과 건물들, 불결한 삶의 조건

    들 등 동100번 가의 현실이 다큐멘터리 사진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라는 사진을 알고 <동100번가East 100th

    street>는 1967~68년에 집중적으로 찍혀진다. 1970년 사진집을 출간에 함께 뉴욕근대미술관(MoMA)에서 개최. 그의 사진

    은 차가움과 따뜻함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이름만큼 마음을 울리는 아름다운 블루스& 재즈의 음색을

    가졌다.

       

▶ 절망을 쏘다 - 다이안 아버스 Daine Arbus(1923~1971)

    현대사진의 신화로 불려지는 다이안 아버스는 세상이 금기시했던 것들, 드러내기를 꺼려했던것들, 아버스는 그것 중의 하나

    가 기형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인, 난쟁이, 지체장애인들을 만나 낮이건 밤이건 플래시를 터트렸다. 암울했던 1960년

    대 세계는 아버스의 카메라에 들어왔다.

    다이안 아버스는 1960년대 중반 내체촌의 나체주의자가 되어 5년동안 그 곳의 '벌거벗은 사람들'을 찍었다. 그는 자신의 사

    진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경계했다. 그런 그녀를 세계적으로 유명한 뉴욕근대미술관(MoMA)이 기획 초대한 것은 놀

    라운 일이었다. 그 외에도 구겐하임 지원금을 받게되고 유명 예술대학으로부터 강의 초청이 쇄도했으며 사진가로서는 처음

    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미국대표로 참가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갑작스레 1971년 자살을 하고 만다.

 

▶ 나는 욕망을 꿈꾸고 싶다 - 듀안 마이클 Duan Michals(1932~)

    듀안 마이클은 사진의 역사에서 가장 자유분방하고 가장 형대적인 의식을 가진 작가로 알려져있다. 사진의 매체적 힘을 재

    발견했던 사람이고 현대사진의 진정한 자율성과 매체의 활용성을 극대화 시킨 최초의 사람이다. 또한 그는 사진에 큰 업적

    을 남겼다. 사진과 텍스트를 결합해 사진이 못다한 것을 글로 보안하고 글로 못다한 것을 사진으로 보안했다.

    1966년 처음으로 시퀀스 포토를 제작. 5장의 연작사진으로 포토스토리화 했던 첫 작품이 <문 때문에 겁먹은 여자>이다.

    그의 시리즈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의 하나가 인간의 성적 욕망을 드러낸 <추락한 천사The Fallen Angel>일 것이다. 이

    작품은 8장의 연작사진으로 구성하였다. 1970년대에 들면서 본격적으로 사진에 글을 첨가하기 시작한다. 1970년에는 6장

    의 시퀀스 포토로 구성한 <우연한 만남Chance Meeting> 작품. 1973년에는 마술처럼 비밀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기묘한

    프레임. <사물은 기묘한다Things Are Queer>는 사진으로써 불가능한 프레임에 대한 즐거운 도전이었다.

    마이클의 위대성과 사진사적 업적은 시공간의 초월, 프레임의 연속성과 확장성, 그리고 전략적 글쓰기에 있다.

 

▶ 고독한 유랑자의 시선 - 요제프 코델카 Josef Koudelke(1938~)

    요제프 코델카는 그리스 출신인 세계적인 거장 테오 앙겔로플로스가 만든 영화 <율리시스의 시선>에서 스틸을 담당한 체코

    출신인 매그넘 사진가이다. 매그넘 사진가 중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그의 첫 개인전은 1961년 프라하에서 개최되고 1966

    년 첫 사진집을 낸다. 하지만 스스로 만족하지 못해 68년부터 집시들을 본격 촬영하기 시작. 훗날 집시 사진은 코델카를 세

    계적인 사진가로 태어나게 된 원동력이 된다. 1970년 그는 집시 사진을 저널에 발표하여 로버트 파카상을 수상. 그의 이름

    이 서서히 보도 및 다큐멘터리 사진계로 퍼져 나갔다. 세계 사진계에도 그의 사진을 주목하기 시작해 1978년 나다르상,

    1980년 미국연방예금기금을 수여받음으로써 쿠델카는 명실공히 예술사진에서도 세계적인 작가이다. 1975 사진집[집시

    Gypsies], 1977 사진집[항해La fin du voyage], 1988 사진집[탈출Exile], 1999 사진집[카오스Chaos]를 출간했다.

 

▶ 26개의 주유소 습격사건 - 에드 루샤 Ed Ruscha(1937~)

    에드 루샤는 현대사진의 지각변동을 초래한 최초의 포스트모더니즘 사진가로서, 사진을 개념으로 몰고간 최초의 사진가로

    말해진다. 70년대 현대사진에서 늘 먼저 거론하는 작가이고, 80년대 사진을 말할 때도 항상 빠지지 않고 거론하는 작가이

    다. 그가 1962년에 촬영하여 1963년 책으로 소개한 [26개의 주유소]. 이 책은 현대사진의 교과서이다. 한 작가의 뜻하지 않

    는 아이디어가, 생각 밖의 컨셉이 사진의 방향을 갈라놓은 역사적 사건이다. 26개의 주유소는 정유회사의 상포가 어떻게 '언

    어적 풍경'으로써 시대 상징이 되는 가를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주목. 사

    진을 텍스트화 했다.

 

▶ 인간들에 의해 변모한 풍경을 찍다 - 로버트 애덤스 Robett Adams(1937~)

    로버트 애덤스는 1970년대 '뉴 토포그래픽스New Topographics'의 기수이자 세계적으로 많은 팬이 있는 미남 작가이다.

    1964년 우연히 케논 시티 링컨 파크에 갔다가 황폐한 모습에 충격을 받아 서부풍경을 카메라에 담기로 결심한다.

    로버트는 인간이 철저하게 파괴하고, 개발에 의해 신음하는, 어쩌면 아름답지 않은 인간에 의해 변모한 풍경을 차갑고 메마

    르게 묘사한다.

    ※ 사진의 역사는 70년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는 두 가지 장르가 있다.

    하나는 'New Color' 또 하나는 'New Topographics'이다

    New Color - 윌리엄 이글스톤의 사진처럼 인공물, 인공적인 컬러를 통해서 새로운 시대성, 새로운 사회 문화의 현상을 말

                        하려 한 미학사진이다.

    New Topographics - '인간에 의해 변형한'새로운 지형학을 뜻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사회 문화의 현상을 인간에 의해

                                      서 변모한 풍경과 환경을 통해서 말하려 한 사진미학이다.

    뉴 토포그래픽스는 철저히 객관적이고, 철저히 가치 중립적으로, 대상과 중립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비교적 대상을 있는 그

    대로, 감정이입을 배제하고 기교를 부리지 않고, 최소한의 왜곡과 중성적 태도를 견지하면서 찍는다.

    뉴 컬러가 컬러로 제작한 작품인데 반해, 뉴 토포그래픽스는 흑백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 화려한 패션, 차가운 시선 - 리차드 아베돈 Richard Avedon(1923~)

    그는 우리 시대의 최고의 패션사진가, 세계적인 광고사진가이다. 그가 있기에 [하퍼즈 바자]와, [보그]가 있었다고 할 만큼

    패션 및 광고사진계의 전설이자 신화 그 자체였다. 평생 어빙펜과 경쟁하면서 그와 더불어 패션과 광고를 예술의 영역까지

    이끌었던 사람이다.

    1970~80년대는 패션과 광고의 시대였다. 세계가 아베돈을 기다린 황금의 시기. 아베돈은 어빙펜을 제치고 패션과 광고사진

    의 정상에 오른다. 텍사스 주의 한 미술관이 아베돈의 스폰서를 맡아 아베돈이 5년동안 서부일대를 돌며 작업을 한다. 124

    점을 골라 1985년 아몬 카터 미술관에서 선을 보인 <미국의 서부>는 엄청난 반응을 몰고 온다. 하지만 비평도 많았다. 문제

    는 촬영방법 때문이었다. 그는 인물의 표면에서 의미를 일깨우고자 했던 의도가 자신의 패션 포트레이트와 크게 다르지 않

    음으로써 비판을 자초한것이다. 아베돈의 절치부심은 10년을 갔다. 1994년 그는 모든것을 털어버리려는 듯 사진인생 50년

    에 대한 회고의 책. 랜덤하우스와 이스트먼 코닥이 후원한 [Evidence : 1944~1994 Richard Avedon]을 내놓는다. 그에게

    있어 마지막 사진집인 이 책은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 화려한 사진인생을 총정리한다.

 

▶ 뉴 컬러를 찾아라 - 윌리엄 이글스톤 William Eggleston(1923~)

    윌리엄 이글스톤은 오늘날 뉴 컬러사진의 기수라고 불리는 70년대 최고의 사진가이다.

    세계적인 사진가들이 초대해 주길 열망한 MoMA의 존 자코우스키가 신인작가에게 문을 활짝 열어 준 계기는 전적으로 컬러

    때문이었다. 1967년 그가 MoMA에 보여준 컬러사진은 소재와 컬러의 질 이 두가지 점에서 큐레이터가 만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새로운 컬러 감각을 보고 10년이란 시간을 기다렸던 것이다. 이글스톤은 마침내 MoMA가 요구한 두 가지 사안

    을 훌륭히 극복했다. 그리하여 하늘에 별 따기라는 뉴욕근대미술관 벽에 뉴 컬러사진을 걸 수 있었다.

    컬러사진은 사진발명 이후부터 형성한 열망이고 꿈이었다. 컬러사진은 1930년대 코닥크롬에 의해 나타나지만 비싼가격, 까

    다로운 제작 공정 때문에 대중들로부터 멀어졌다. 하지만 1970년대에 새로운 컬러사진의 르네상스를 맞이한다.

    기술의 발달은 제작 공정을 쉽게 했고 비용을 저렴하게 했다. 거기에다가 컬러TV 방송,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영향력, 간편

    한 폴라로이드 SX-70, 코닥 인스타매틱 카메라 대중화 이것들이 70년대 화려한 컬러시대를 개막하였다.

 

▶ 스칸디나비아에서 온 편지 - 에스코 만니코 Esko Mannikko(1959~)

    핀랜드의 대표적인 사진가. 그녀의 대표작 [퀴바니에미]는 퀴바니에미의 초자연적인 풍경과 북해를 무대로 거친 바다에 삶

    을 의탁하는 스칸디나비아의 삶의 정황들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다. 에스코 만니코의 사진은 감정의 복귀 혹은 감성의 회복이

    핵심이다. 어려운 이론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는 사진, 사진 그 자체로써 소통에 지장이 없는 사진, 그러면서도 삶의 정황과

    일상의 세세함이 간과하지 않고 나타나는 사진이 만니코의 사진이다.

    만나코는 '사진이란 사람들과 함께 한 세상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리고 사진가의 참여를 소중히 여긴다. 대상 속으로, 대상

    을 향한 사진가의 참여가 없다면 사진이 아니라고 말한다. 함께 한 삶이 사진이라는 것이다.

 

▶ 그해 여름의 마지막날 - 족 스터지스 Jock Sturges(1948~)

    족 스터지스 인공 빛이면 인공 빛, 자연 빛이면 자연 빛, 모든 빛 앞에서 가장 아름다운 육신을 찍는 사진가라고 말해진다.

    그리고 샐리 먼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고전적 누드사진을 만들어내는 작가로 알려져있다.

    그의 누드사진은 매우 아름답다. 흑백사진만을 고집하여 가장 아름다운 인간, 가장 아름다운 흑백사진을 만드는 작가중의

    한 사람으로 꼽히기도 한다. 족 스터지스의 사진은 누드가 아니라 나신이다. 인공적인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얼마나 아름

    다운 흑백 누드사진인지 들여다 보노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성스러움을 느끼게 한다.

    가장 사랑받는 흑백사진가 그의 사진집으로는 1991년 세상에 나온 [마지막 여름날The Last Day of Summer], 1994년에

    출간한 [멸망하는 자아Radient Identities]가 있다.  

 

▶ 인간의 영혼을 담는 카메라 - 애니 레이보비츠 Annie Leibovitz(1949~)

    애니 레이보비츠하면 사진가이면서 세계적인 명사에 끼는 유명인이다. 스타들이 오히려 그녀를 가까이 가려고 했고 그녀에

    게 찍혔다는 것만으로도 유명세를 타는 연예인보다 더 스타같은 사진가이다. 그러나 애니 레이보비츠는 아주 검소하고 소탈

    한 사진가이여 대중들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는 사진가이기도 하다. 세계 유명인의 사진을 거의 독점하다시피하여 "아! 이

    사진"하면 그것은 틀림없이 애니가 찍은 사진이다. 그녀가 찍은 사진이 그만큼 낯익다는 뜻이다.

    1960년대 말부터 사진을 시작하여 70년대 초반 [롤링스톤]의 아트디렉터에 발탁. 잡지사진에 발을 들여놓는다. 3년 후에는

    수석이 되었으며 이때부터 본격적인 에디토리얼 사진가로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해 1970년대부터는 잡지사진에서 점차 패

    션사진까지 영역을 확대하기 시작한다. 아울러 예술사진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 대표적인 사진이 1976년 촬영한 <잭슨 브라

    운과 함께 한 로드 투어On the road with Jackson Browne>일 것이다. 애니 레이보비츠의 주가는 역시 [롤링스톤]을 통해

    나타난다. 이곳에 실린 사진들이 애니의 명성을 드높였고,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게 했다. 특히 [롤링스톤]이 1974년부터 전

    면 칼라로 인쇄하면서 그녀의 사진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그녀는 1980년대 초반 그동안 몸담았던 [롤링스톤]을 떠나 [베니티 페어]를 위해 일하게 된다.

    애니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존 래논과 오노 요꼬>, <이사벨 로셀리니와 데이빗 린치>, <말콤 멕라렌과 블루보이>, <죠디 포

    스터>, <로제나바와 톰 아놀드>, <신디 크로포드>를 들 수 있다.

 

 

 

출처 : 사진모임 2008
글쓴이 : 백수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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