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진가탐구

에드워드 웨스턴...

kwendol 2008. 7. 22. 10:56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 1886-1958)


웨스턴은 “카메라가 눈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쓰지 않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라는 말을 했다. 디지털 카메라가 일반화되어 쉽게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요즘 시대에 곱씹어 볼 문구이다


* 1886년 미국의 일리노이 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뉴잉글랜드의 목사나 교수, 의사 등을 배출한 집안이었다. 그가 사진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1902년, 열 여섯살 때 아버지가 코닥회사의 복스 카메라를 사준 데서 비롯되었다.  사진계의 피카소라고 불릴 만큼 근대 사진계에 끼친 영향이 크다. “렌즈는 인간의 눈보다 많은 것을 본다”는 사진예술관을 지녀 즉물적(卽物的)인 묘사를 하며, 또한 형태의 추상화와 사물의 물질감을 꾀하였다. 특히 1930년대 캘리포니아주 포인트로보스에 정주하면서 촬영한 시리즈 작품은 투철한 자연관조로 일관된 걸작으로, 1937년 사진작가로서는 최초로 구겐하임상(구겐하임 재단이 주관하는 장려상)을 받았다. 그의 영향 밑에 있던 A.애덤스를 중심으로, 1932년에는 그가 추구하고 있는 사진세계에 동조하여 모여든 젊은 세대들과 함께 F-64 그룹을 결성되어 화제가 되었다.. 1930년에는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한데 묶어서 뉴욕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1940년 “캘리포니아의 서부”라는 사진집을 펴냈다. 1946년, 그의 나이 60세 때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대대적인 회고전을 열었다. 1948년에는 그동안 지병인 파킨슨씨병이 악화되어 이제까지 찍어온 포인트로 보스의 작업을 가까스로 모두 마무리 지었다.  이로서 사진가로서는 한계점에 다다른 웨스턴은 1958년 1월1일, 71세로 세상을 떠났다.

웨스턴은 작은 키에 강한 완력의 남자였다 만년에 파키슨병으로 건강이 나빠지기전까지 평생 곁에 여자가 없어 본 적이 없었던 남자였다.일정한 기간까지 산 여자만도 대 여섯이 된다..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평생을 돈 때문에 어려워하면서 살았다. 방대한 일기형식의 사진에 관한 글을 출간한 사진계의 첫사람. 최초의 구겐하임 사진지원금 수혜자.  평생 정치와 무관했다.

사진이 아니면 표현되지 않는 시각예술의 한 영역을 완전할 정도로 구현했고 문학적 소양도 대단했다. 아들이 넷이었는데 이 중 둘이 사진가가 되었고 그 중 손자 하나가 사진을 하고 있다. 그가 친하게 지냈던 엔셀 아담스가 표면 품질에 집착했던 사람이라면 웨스턴은 표면아래의 품질에 철저했던 사람이다.


웨스턴의 사진세계

웨스턴의 사진세계는 즉물사진의 추구이다. 즉물사진이란 주관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대상 그 자체를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사진이다. 그리고 사진의 광학적인 기록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하여 철저하게 대상의 객관성을 추구하는 사진을 말한다. 대상에 대한 이러한 엄격하고 절대적인 객관성 추구는 극단적인 사실주의의 태도이다. 예술사조에 있어서 즉물주의는 다름 아닌 사실주의를 말하는 것인데, 사실주의를 강조하는 의미에서 이 말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즉물주의를 미술적 사실주의라고 일컫기도 한다. . 웨스턴의 즉물사진은 모두가 굳건한 조형적 골격으로 구축되어 있다. 그의 사진은 모두가 미국 서부지방의  대자연을 주제로 찍은 것들인데, 이런 주제들을 웨스턴은 기하학적인 조형으로 시각적인 통일을 꾀한 것이다.“피망”을 예로 들면, 그것은 먹는 음식물로서가 아니라 인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그 자체의 존재이유를 가진 주체로 파악되고 있다.  우리는 모든 대상을 자기 본위의 속박을 떨쳐 버리고 대상을 대상 그 자체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웨스턴의 사진 세계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들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 웨스턴은 추상주의와 초현실주의를 넘나들며 예술과 사진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해왔다. 그러나 그가 궁극적으로 주목했던 것은 바로 대상의 사실성 표현. 웨스턴이 흑백인화지에 담아낸 사막, 조개, 피망, 바위 등은 정확한 형태 및 선명한 질감과 함께 보는 이들로 하여금 실제로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또 무엇보다 그의 사진에서 우리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그에게 있어 가장 열정적이었던 주제, 바로 누드이다.


 *인체의 형상을 연구하고 사실성 이상으로 몸의 굴곡과 숨결까지 담아내길 원했던 그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찍어내면서 디자인, 구도는 물론 세부묘사에까지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그의 가장 뛰어난 누드 시리즈의 모델이자 제자, 연인이었던 티나 모도티를 찍은 사진들은 근대 사진사에서 한 획을 그었다. 그리고 그와 그녀의 운명적인 만남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티나 모도티(Tina Modotti, 1896-1942)

◉ 웨스턴의 연인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이민가족 출신인 티나 모도티는 미국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재봉사, 의류공장, 모델, 삼류배우 등을 전전했던 그녀는 첫 번째 남편의 사망 후 에드워드 웨스턴을 만난다. 사진의 전설이라 불리는 웨스턴은 모도티를 만나 4녕 동안 연인 관계였다고 한다 모도티는 웨스턴의 조수로 일하며 사진을 배우고, 연인이 되면서 웨스턴이 남긴 누드사진의 모델로 절묘한 여체를 만천하에 드러낸다. 1923년 웨스턴과 함께 멕시코로 떠난 모도티는 이후 스스로 품고 있던 천재성을 발휘하며 사진작가로 열정적으로 작업한다. 모도티는 멕시코에서 당시 벽화운동을 이끌던 디에고 리베라 등과 만나면서 웨스턴의 그늘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결국 1926년 웨스턴은 4년간의 멕시코 생활을 접고 혼자 캘리포니아행 열차에 오른다. 애인 모도티를 멕시코에 남기며 웨스턴은 “멕시코를 떠나는 것은 바로 티나를 떠나는 것으로 기억될 것이다”라는 저 유명한 글을 노트에 남겼다.


 *웨스턴은 인간내면을 세밀하게 파고 들었다

체모와 손발톱을 다듬지 않은 모델이 그러니까 가공되지 않은 원초적인 모습과 사막이라는 정적이고 태고의 이미지를 가진 공간과 배치시킨 웨스턴의 누드사진들은 웨스턴의 작품세계를 농밀하게 보여 준다


*웨스턴의 연인으로 알려진 티나 모도티는 사실 멕시코 근대 사진의 방향을 제시한 예술가인 동시에 혁명가이기도 했다


웨스턴과 사랑에 빠지면서 사진에 대한 천재적인 영감과 열정을 꽃 피우게 된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모도티의 사진 기술이 거의 대부분 웨스턴에게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웨스턴과는 다른 독특한 스타일로 사진의 대상들과 교류하며 정밀함과 우아함, 신비로움을 잃지 않았던 그녀는 한때 이민자로서의 아픔을 앓았던 까닭에 가난과 고통, 힘겨운 노동에 대한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담아냈다.



'세계사진가탐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가들...  (0) 2008.07.22
브레송...  (0) 2008.07.22
으젠느 앗제...  (0) 2008.07.22
일프레드 스티글리치...  (0) 2008.07.22
듀안 마이클...  (0) 2008.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