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장의 사진 미학
3부 한 장의 사진을 느끼다 인식이 열리는 통로 ~ 우리를 비추는 거울
인식이 열리는 통로
김병훈의 <산책이 그리운 이유>라는 사진은 감각 너머에 감성과 이성을 차곡차곡 쌓아 두었기에 보면 볼수록 인식의 통로가
더 열리는 사진이다. 이미지의 노예에서 사진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진정 사물과 순수한 대화가 이루어졌을 때 가능하다.
그래서 김병훈의 사진을 보면 김춘수의 <꽃>이 떠오른다. 그의 사진은 <꽃>의 마지막 구절 "너는 나에게 / 나는 너에게 /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의 완결이다. 사진을 말없는 언어, 혹은 비주얼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는 것도 이렇게 사물
에 내재한 무언의 언어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병훈의 사진처럼 사물(혹은 대상)이 스스로 말하는, 즉 찍힌 자의 내적 소
통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 점에서 <산책이 그리운 이유>는 기호적 사진의 맹점으로 지적되는, 혹은 현대 사진이 종종 간과해
왔던 내면의 소통을 여는 사진이다. 사진이 말하게 한다는 것은 곧 사물의 관념이(상징 혹은 기의) 말하게 한다는 뜻이다. 무언
의 사물과 말한다는 것, 그러니까 말없는 사물들에 다가서고, 귀 기울이고, 그리고 사진을 통해 인식의 통로를 여는 것, 이것이
사진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자 매력이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 모리는 죽음을 내포한 현존의 이야기 혹은 소멸과 부재를 비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은유이다. 내면으로 잠행하는 죽음의
표상, 결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잠행하는 죽음의 표상, 결코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
것은 또한 노에시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은 구체적인 죽음을 지시한다기보다 인간과 사물의 존
재적 사멸, 즉 현존에서 퇴행하거나 멀어져 가는 부재성에 대한 경고이다. 메멘토 모리는 그래서 시간에 의한 소멸이나 그체적
인 죽음이라기 보다는 사물 자체에 내재해 있는 존재론적인 죽음이다. 이성제의 <무제>라는 한장의 사진이 있다. 이 사진에는
메멘토 모리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고, 롤랑 바르트가 늘 입버릇처럼 말했던 "죽음은 사진의 본질"이라는 뜻을 음미할 수 있다.
이성제의 사진은 문명사회에서 소외된 고독한 주체와 대상이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는지 보여준다. 사물속에 '나'를 이입하고
사진속에서 그 사물과 함께 정체성을 드러내는 사유 체계가 메멘토 모리, 바로 "죽음을 기억하라"이다. 이성제의 사진은 존재와
부재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보여 주고, 사진만이 현실을 드러내고 삶을 분기하며 자아와 대상을 일치시키는 유일한
수단이자 도구임을 증명하고 있다.
말해질 수 없는 것들
김재경의 <뮤트>라는 한장의 사진이 있다. 뮤트는 '무언의' 혹은 '침묵의'라는 뜻이다. 이 제목에서 드러나듯 그의 사진은 추억
과의 대화, 혹은 과거로 향하는 무언의 앨범이다. 이 사진은 왜 집이 아름다운지를, 그리고 그 아름다움 속에 깃든 존재와 부재
의 그림자를 볼 수 있게 한다. 사진이 '말이없다'는 것은 전설과 신화 속에 잠겨 있다는 뜻이다. 용도 폐기되고 삭아버린 사다리
가 침묵과 비어 있음의 증거이다. 그것은 이별과 죽음, 상실과 공백이다. 또한 한때 우리 삶을 끈끈하게 이어주던 공동체 의식
과 신뢰가 해체되었음을 상징한다. 침묵의 사다리는 작가 김재경의 실존의 안팎을 넘나든다. 그 사다리는 자기를 반영하는 존
재론적 음영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삶 전체에 비판적인 시각을 투영한다. 그래서 사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사진은 지난 삶을 회
고할 수 있는 시간을 열어 주고 현재의 의식 속으로 내려앉는다. 그의 사진은 가장 알맞은 거리에서 우리를 향하고, 우리로 하
여금 가장 알맞은 거리에서 그것들을 향하게 한다. 그래서 가장 쓸쓸하고, 적당히 슬프고, 그러면서 보기 싫은 것이 지워진 아
른다운 구도를 보게 한다. 한쪽을 비추어서 나머지 한쪽을 알게 하는 사진, 바로 김재경의 사진이다.
기억의 귀한회로
핀홀 이미지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감정을 훨씬 쉽게 일치시키는 매력이 있다. 사로 다른 시공간 속에서도 서로의 마음
을 통하게 하는 매력이 핀홀 사진이 갖는 강점이다. 파격적인 피사계 심도, 불투명한 샤프니스 블러 등 정통 카메라와 다름 형
상을 창조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시간을 관류하고 축적하는 시간의 통로라는 점이다. 핀홀은 그 시간의 통로로
과거를 불러내 아득하기만 했던 기억을 되살려 낸다. <뉴욕 풍경>이라는 정영혁의 핀홀 사진이 있다. 그의 사진은 '과거 속으
로' 풍덩 빠져들게 한다. 근경에는 비둘기 한마리와 초점에서 벗어난 사람의 오른손이 있고, 중경에서는 오른쪽 하단 프레임 밖
으로 빠져나가려는 익명의 사람이 보이고, 원경 저쪽에는 사선으로 기울어진 불안한 건물이 있다. 전체적으로 차고 음산하고
불안한 풍경, 맨해튼 뒷골목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이 풍경이 내게 흐린 추억의 잔영을 흔들고 있다.
떠난사람 남는사람
흰눈 속으로 예술의 거장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가고 있다. 임응식, 호는 부석 1912년 부산에서 태어나 만 스무살에 사진을 시
작, 불과 20년 만에 한국사진을 평정하고 반세기 동안 한국 사진을 이끌었다. 사진계의 거목이셨던 그분이 가셨다. 그분이 살
아계실 때 단 한차례도 그분과 자리를 같이 해본적은 없었지만 그분이 가셨다는 말을 듣고 나는 여러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분이 생전 사진에 가지고 있던 열정, 사진의 진정성을 이시대 한국의 작가에게 쏟고 후배들을 지속적으로 키워냈다면 한국
의 사진이 이렇게 뿌리가 없진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고 그런푸념과 원망을 속 시원하게 그분에게 쏟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떠나신 다음 날 비록 인터넷 갤러리 였지만 그분의 추모전을 밤새 준비하면서 그분의 사진관과 의도적으로 외면했던
작품의세계 또한 인정마저 꺼려했던 그의 사진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분은 사진에대한 순도높은 사랑으로 일생을 사진
에 바치신 분이고 애인같은 애정으로 자신의 독선과 고집을 누른채 한평생 사진에 투신할 수 있었으며 그로인해 자신의 역량
안에서 빛나는 업적을 이룩 할 수 있었다. 사진의 기술적문제와 열정으로 한국의 사진계를 이끌기 원했던 그분에 대한 원망은
그분이 한국사진에 보여주었던 뜨거운열정 헌신적 사랑을 느낀순간 그경이로움으로 바뀌게 되었다. 사람은 사진을 남긴다 그
분도 하나의 사진만은 속세에 남겨두고 가셨다. "영정사진" 한국 사진계의 거장이셨던 그분도 범인들 과 같이 마지막에 영정사
진 한장만을 남긴체 가셨고 그 영정사진은 그분의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풍경은 휴식이다
세상의 많은 사진 중에서 풍경사진만큼 편히 보고 또한 편히 즐길 수 있는 사진은 없다. 그러나 이러한 풍경사진은 두가지를 사
진작가에게 요구한다. 하나는 혼자오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장"만 찍으라는 것이다. 풍경은 누구나 즐길 수 있고 다같이
볼 수 있지만 모두를 수용하지는 않는다. 풍경은 그 사람에게 추억을 주고 한장의 사진만이 그것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느낌을 가지게 되며 휴식이 되기 때문이다. 강영길의 <슬픔을 견디는 나> 라는 한장의 사진은 흑백으로 고독을 표현하고
보는 사람으로하여금 휴식을 가지게 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사색을 가지게 하여 단순한 풍경 그 이상을 가지게 한다.
이렇듯 혼자서 오직 한 장만 찍은 사진이 진정한 풍경사진이다 그런 사진이야말로 내밀하고 다정하고 비밀스럽다. 풍경은 아
무나 다가가서 찍을 수 있는 대상이지만 풍경과 함께호흡하지 못하거나 그 속으로 풍덩 빠져들지 못하면 그 풍경사진은 단순
복제에 불과하다 풍경이야 말로 말할 수 없는 어떤 고결함이 쉽게 눈을 뗄수 없는 흡인력이 있다.
리얼리티의 진정성
사진을 보다 보면 첫눈에 좋은 사진이 있고 보면 볼수록 좋아지는 사진이 있다. 또 처음 보았을 때 느낌이 확 오는 사진이 있고
그 느낌이 시간이 갈수록 옅어지는 사진이 있다 그런가 하면 첫눈에도 시간이 흘러도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감정의 변화에 따라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사진도 있다 그것은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대상에 대한 판단이 다른것이고 경험한
삶의 리얼리티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즉 현실을 인식하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결론 지을수 있다. 이것은 사진을 볼때
서로 다른 감정을 가지고 바라보는 이유인데 사진의 작가와 보는 관객이 서로 같은 리얼리티를 공유 하고 있으면 좋은느낌 좋
은 사진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리얼리티는 교육을 통해 작품과 관객 간에 존재하는 리얼리티의 차이를 극복해 갈 수 있다 사
진을 오래보면 좋아지게 되고 친숙해 지는것도 일종의 교육 효과라 할 수 있다.
순수,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진광불휘(참된 빛은 빛나지 아니한다)" 통도사 주지셨던 성파 큰스님이 말씀 하신 것으로 순수사진을 이보다 더 잘 표현 한
것은없다. 순수사진은 칭찬받기위해 상금과 명예를 겨냥한 콘테스트용 사진 이 아니라조작되지 않은 피사체와 만나고 과장되
지 않은 진실로 정화된 마음에서 출발된다. 그렇다고 하여 사진, 노즐이 맞지 않은사진, 발색이 제대로 되지 않는등 마구 찍은
사진이 순수사진이고 그것들이 곧 의미있는 사진이라는 말은 아니다. 순수사진은 예술적의지를 갖되 그것이 밖으로 넘쳐 나거
나 과용되지 않는사진, 피사체를 필요이상 강조하지도 작가의 욕심을 드러내지도 않는사진 특별한 기법없이 현실을 그대로 보
여주는 사진을 말한다. 그러므로 순수사진은 "순수한동기" 그에따른 "피사체의 선택" 이 주요 요소가 되며 그로인해 사진작가들
은 순수사진을 어려워하며 차라리 "무명작가에게서 진정한 순수사진을 찾을수 있다" 는 자조적인말을 하기도 한다.
순수사진을 잘 말해주는 김경덕의 <일상-이불> 이라는 작품이 있다. 그는 작품의 동기와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 순수사
진의 가장 모범적인 작품이라 할수 있다. "진광불휘" 참다운것은 빛을 발하지 않는다는 말은 순수사진 이야말로 화려하지 않음
에서 사물에 대한 진정한 그 순수의 참 뜻을 보게된다.
현실 너머의 현실
사진을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 초현실주의 작품들을 보면서 '왜 이런 사진들이 초현실주의 사진으로 규정 했을까' 라는 의문
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진들은 거리의 풍경 등 일상적인 생활에서 소재를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작품들이 왜 왜 초
현실주의 사진 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 화가는 드 키리코 였다. 그의 작품은 초현실이란 현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고 비현실과는
다른것 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초현실주의 사진은 이렇듯 현실에서 조성될 수 없는 상황을 조성한 이미지 이다 즉 현실에서 만
날 수 없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건을 담은것이 초현실주의 사진이다.
초현실주의 사진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진중 조남봉의 (오하이오, 마리타)라는 한장의 사진이 있다. 조남봉은 현실속에서 초현
실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알았고 그래서 그는 낭만적인 정조가 없으면 다가서기 어렵고 꿈과 영화처럼 영상화될 수
없으면 만들기 어려운 초현실주의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현실을 '꿈의 자기장으로 만드는것 그리고 '시처럼 영화처럼 표
현하는 것' 이것이바로 초현실 주의자들의 강령인 것이다.
삶의 모드, 사진의 모드
모드는 스타일보다는 촌스럽지만 정겨운 말이다. 모드는 밖을 향해 반짝이는 스타일 과는 다르게 안으로 향하는 깊이가 있다.
둘 다 선택을 전제로 하지만 모드는 즉흥적인개성과 변화가 아닌 사회와 문화 속에서 일관된 양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스타
일과 분명히 구별된다. 사진의 모드는 삶의 모드가 만들어낸 형상이다 그래서 한장의 사진은 마치 우리가 편지만 보고 글쓴이
의 마음과 영혼을 읽어내듯 사진작가를 드러내는 창이고 거울이다 그러므로 사진의 모드는 작가의 작품세계이고 작가의 삶과
작품의 모습이 다르다면 가식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삶은 곧 예술이 되고 예술이 곧 삶이다. 그러므로 가장 치열한 삶의 모드
가 반영된 사진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다.
뒤쪽이 진실이다
세상에 태어난 사진의 절반은 아니 대부분은 누군가의 앞모습을 비추는 거울 같은 사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면을 통해
그 사물을 드러내려고 한다. 그러나 뒷모습은 반대편 그저 드러나는 의지의 세계는 아니나 앞모습 이상으로 생의 의미와 진실
의 거울이 되기도 한다. 사진또한 그러하다. 앞모습 사진과 달리 뒷모습 사진에는 꾸미거나 감추지 않은 진실이 있고 그래서 더
쓸쓸하다.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 그렇게 한없이 떠나가는 사람의 이미지가 오히려 존재의 부재를 각인시킨다.
세상의 진실은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이면이 더 중요할 수 있고 숨어 있는 곳이 더 진실할 수 있다.
우리를 비추는 거울
사진이 도시를 대상으로 도시 안에서 도시를 역사화 하는 과정은 기억 혹은 추억에 의지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도시는 그 자체
로 역사가 될 수 없다 도시는 변화되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우리 기억과 추억을 아우르면서 도시를 역사화하는 가
정 이상적인 매체이다. 사진은 두가지 방식으로 도시와 만난다. 하나는 오래된 사진속에서 도시의 역사를 확인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속에서 어제의역사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도시, 건축, 건축적 공간은 현대사진의 중요한 소재가 되고있다. 오
늘날 도시보다 더 중요한 주제도 소재도 없을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있는 현실이 이곳에 있고 현대적인 삶이 있기 때문이
다. 벨터 벤야민이 말한다 "살기도 힘들지만 떠나기도 힘든 곳, 사랑하면서도 싫어지는 곳, 유쾌함과 희망의 출처이면서 동시에
혐오감과 절망의 원천인 곳, 바로 도시"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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