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이모저모

[스크랩] 현대사진의 판타스마고리아

kwendol 2008. 10. 22. 13:55

현대사진의 판타스마고리아

-사진도, 그림도, 영화도 아닌 픽쳐



한때 세계를 정확히 재현했던 사진은 이제 그 정확한 재현을 포기한지 오래다. 대신 현실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픽쳐로서 자리잡고 있다. 사진 이 전통적인 사실적 재현에서 현실적 재현으로 탈바꿈한 것은 무엇보다 실재를 대용한 모조물, 즉 가상성 때문이다. 사진은 대상이 참일 때 참 이 되는 매체이다. 그러나 현실은 더 이상 참일 수 없는, 심지어 참이 아니어도 좋다는 하이퍼리얼한 상황이 사진의 진실성과 사실성을 무력화 시키고 있다.

 

사진이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에 존재하는 방식은 이제 이미지로 남거나, 조금 고상하게 픽쳐라는 이름으로 자리하는 방법밖에  없을지 모른다. 마르크 기욤은 우리시대 예술적 특징으로서 인공성, 가상성, 모조성을 들었다. 그는 실재란 그저 수수께끼 같은 것이며, 예술 이 여전히 새로운 세상에 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바로 이것들을 이미지 메이킹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얼마 전까지 팩션(Faction)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 있다. 팩션은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합친 합성어이다. 다른 말로 이해를 돕는다면 팩션은 사실과 상상력의 믹싱(mixing)을 뜻한다. 문화비평은 좀더 고상하고 품격 있는 말로 팩션을 “사실적 재미와 유희적 상상력의 절묘한 결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팩션은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를 무대로 삼으며, 또 모바일 게임 시대를 강력히 상정한다. 사실성의

결핍과 상상력 과잉이 팩션의 힘이다. 우리가 “사실 같은 그러나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는” 그런 모호한 리얼리티의 유희적 모습을 팩션이라 는 말로 돌려 칠 때 현대사진은 이 지점에서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난다. 팩션이란 말이 그리고 용어가 적절히 통용 가능한 예술의 모습이 바로 현대사진이다. 따라서 오늘의 현대사진을 보다 잘 이해하는 방법은 바로 팩션을 이해하고 바라보고, 또 그에 따fms 개념적, 형식적 방법론 을 살펴보는 것이다. 바로 이때 현대사진은 오늘날 어떤 의미로, 어떤 유형으로, 그리고 어떤 리얼리티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매체의 당위성을  확보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사진에서 “사진(寫眞)”의 문제


우선 익히 알고 있듯이 사진은 80년대에 전가의 보도처럼 구사했던 사실성(事實)을 포기한다. 물론 스스로 포기했다기보다도 사회가 포기하도록 유도한 면이 크다. 여기에는 열풍처럼 번진 포스트모더니즘 사진이 찍는 사진에서 만드는 사진으로 이끌었던 원인도 크고, 여기에 사회 현상과 사회 철학까지 모조성과 가성성을 최대 화두로 삼았기 때문에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그대로를 재현하는데 본분을 삼았던 사진은 점점 설 자리를 잃었다.

 

또 재현의 진실성이 무력화 되어가는 와중에서 교묘하게, 그리고 원격적으로 다변화되는 새로운 표현성이 더욱 사진의 입지를 옭아맸다. 그리고 그 순간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이라고 하는 새로운 사진의 양식이 출현한다. 포스트리얼리즘은 쉽게 말해 후기 리얼리즘 혹은 리얼리즘 이후로 해석된다. 후기산업사회에서 전개되는 인공성, 가상성, 모조성의 리얼리티로 수용하는 새로운 현실주의 시각을 말한다. 가상
과 원격사회에서 구조는 사진이 그러하듯이 실제 구조가 아니다. 오히려 영화 <매트릭스>처럼 인공, 가상, 모조 리얼리티 모습을 취한다

 

이것 을 기반으로 출발한 현대사진의 모습이 바로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이다.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만든다"고 했을 때, 맨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과거의 리얼리티와 현재의 리얼리티를 구분하여 인식하는 일이다. 과거 메이킹 포토(making photo)가 금세 자리를 잡고 폭발적으로 확산된 것은 메이킹 포토의 재현의 형식성이 아니라 그렇게 수용할 수밖에 현실 의 조건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테크놀로지 시대에서 중요한 사진적 요소는 현실의 리얼리티를 구성하는 세트와 프로그램 이미지 메이킹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진은 이제 사진도 아니고, 그림도 아니고, 영화도 아닌 현실의 픽쳐이다.

 

픽쳐는 사진과 그림 그리고 영화의 중간지대, 그리고 독립지대에 위치한다. 픽쳐를 강력하게 지워한 것은 바로 일상성의 강화, 즉 일상의 스펙터클화이다. 여기에 새롭게 각색된 현대사회와 문화 유형성이 스펙터클화를 더욱 부추겼다. 사진이 80년대 들어 요동친 것은 바로 일상(everyday life)의 대두이다. 일상성 강조는 새로운 서사, 새로운 형식미학의 출현을 알렸다.


사진도, 그림도, 영화도 아닌 픽쳐


갤러리 현대의 는 그런 점에서 현대사진의 최근 지형을 보여주는 전시이다. 토마스 디멘드(Thomas Demand)를 비롯하여 더크 브렉크먼(Dirk Braeckman), 비크 뮤니즈(Vik Muniz), 클라우스 고디케(Claus Goedicke), 제임스 케제비어(James Casebere), 제인 앤 루위스 윌슨(Jane & Louise Wilson), 로우 에트리지(Roe Ethridge), 샤론 코어(Sharon Core) 그리고 이윤진 등 9명의 작가들은 사진도, 그림도, 영화도 아닌 픽쳐로 자리하는 사진의 모습을 보여준다.

 

픽쳐는 전시 서문을 쓴 리나 자나 (Reena Jana)의 말처럼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받아들이는 현실과 객관성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는 것이고, 또 그림이라는 주관성과 추상성에서도 한발짝 뒤로 물러나는 것이며, 역시 같은 맥락에서 영화 의 가상의 실제화와 인위적 시공간 시퀀스로부터도 한 발짝 물러나는 것이다. 픽쳐(picture)는 사진도, 그림도, 영화도 아닌 현실의 이미지를 이미지 메이킹하는 팩션의 모습이다.

때문에 9명의 작가들은 현대사진의 팩션화의 가장 보편적인 재현 방식과 포스트리얼리즘의 창작방식인 “스틸 라이프 이미지(Still Life mage)"를 공통점으로 한다. 토마스 디멘드는 아카이브 박스(box)를 세트화 시키고 있으며, 더크 브렉크먼은 실내를, 제임스 케제비어는 하우스를, 제인 앤 루위스 윌슨 하이테크 가구와 기계들을, 샤론 코어는 여러 조제 식품을, 이윤진은 책장을 스틸 라이프를 이미지 메이킹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하나 같이 스틸라이프 이미지, 그리고 장식과 세트를 중요시하는 유형성의 이미지를 보여주는가?

 

바로 이것이 현대사진을 가장 빨리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스틸 라이프(Still Life)의 재현성을 이해하는 것, 디스플레이 장식성과 디렉팅된 인테리어 세트를 이해 하는 것이 그것이다. 당연히 현대적 일상, 즉 재구축, 재구성, 재조립의 표준화 일상이 드러난다. 유형은 표준화 세트의 자기증식성이다. 또 유형은 개인과 사회에 광범위하게 확산된 프로그램 변경이 불가능한 글로벌 스탠더드이다.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시스템 파일과 같은 것이다.

스틸 라이프 이미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사진도, 그림도, 영화도 아닌 픽쳐의 이름으로 동시대 사회성을 이미지 메이킹하는 모습이다.


픽쳐, 현실 재구성의 이미지


갤러리 현대의 <픽쳐>는 이것들을 보게 한다. 현대사진의 최근 모습이 왜 이렇게 유형에 빠져들고 또 디렉팅에 의한 세트화 모습으로 나가는가

를 알게 한다. 물론 전시된 사진들은 사진의 사실성을 말하지 않는다. 또 있는 그대로 재현이라거나, 진실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모방적이라거나, 인공적이라거나, 모조적, 허구적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즉 현실을 반영할 뿐 규정짓지 않는다. 포스트 리얼리즘은 이러한 변화된 일상과 변화된 리얼리티를 축으로 하기 때문에 포스트 리얼리즘 사진도 획일화되어 가는 현대사회의 모습과 현대인의 일상적 삶을 테제 로 삼는다. 그리고 이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현실감 넘치는 인위적 연출을 감행한다. 당연히 연출성, 인공성이 포스트 리얼리즘 사진의 주된 창작 방법론이 되고, 또 그렇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일상을 세트화하고 연출한다. 현실이 재구성되는 모습이 바로 픽쳐이다.

세계는 지금 9명의 작가 말고도 다양한 작가들이 현대사진의 양태로서 픽쳐의 모습을 보편화시키고 있다. 필립-로르카 디코르시아에서 시작된 변화된 현실주의 시각과, 그것을 이어받은 제프 월의 영화적 디렉팅과 영화적 미장센(mise-en scene) 시각, 그리고 티나 바니, 스테판 엑슬러, 사라 존스, 한나 스타키, 앤 자할카, 샘 타일러-우드로 이어진 사진의 모습은 포스트리얼리즘 사진의 꽃이다.

 

여기에 최근 새로운 시대적 유형들(Typologies)이 접목되어 더욱 광범위하게 보편화의 모습을 띠고 있다. 또 여기에 일조한 것이 디지털 프로세스이다. 지금은 전통의 북 유럽 작가들까지 확산되어 핀랜드의 에스코 만니코에서부터 네덜란드의 리네케 디크스트라까지 현대사진은 현대인의 여가생활, 여흥, 놀이문화 에서부터 근무양태, 쇼핑양식, 사무구조, 스트레스 해소법에 이르기까지 유형적이고, 세트화된 동시대 삶의 양태와 아이러니를 재현하고 있다.



-진동선, 사진평론가, 현대사진연구소장

[공간](2005. 8월호)

출처 : 한국사진문화연구모임 현대사진포럼
글쓴이 : 김영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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