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진가탐구

[스크랩] 현대사진의 쟁점 6

kwendol 2008. 10. 13. 11:18

'창작 워크숍'의 주체 그리고 교육의 목표

-<창작 워크숍>은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시도되고 단순한 워크숍이 아니라 하나의 교육사업으로 자리한다. <'98 창작 워크숍>은 6주 동안 '사진비평 및 이론', '예술사진 창작 워크숍', '다큐멘터리 사진 창작 워크숍', '광고사진 창작 워크숍'등 4개의 영역에서 총 11명의 강사들이 각기 클래스를 갖고 150 여명을 교육시킨 대학 사진학과의 규모였다. <'98 창작 워크숍>은 교육 목표를 분명히 했다. 대안교육의 장으로서 "기존 제도교육의 모순점과 획일화된 교육에서 탈피하고자 여러 대학, 여러 장르, 다양한 시각을 지닌 사진가들이 한꺼번에 모여 강의를 벌임으로써 건강한 소통성과 미래를 향한 하나의 발화점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창작 워크숍의'의 운영 및 교육과정

-<'98 창작 워크숍>의 경우는 이런 점들이 미비했다. 시내 호텔에서 치러져야 했던 교육여건, 급조된 프로그램의 부적절함, 사전 준비되지 못한 강사들의 강의계획서, 교육에 활용될 시청각 시설 및 교육자료 미비 등등 여러 가지 점에서 생산성과 효윬ㅇ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있었다. 특히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던 것은 예측할 수 없는 피교육자의 구성, 수준 차가 나는 피교육자들을 어떻게 교육시키며, 또한 강의실 중심의 교육에서 성취도를 제고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98 창작 워크숍>이 주입식 교육 혹은 강사가 모든 것을 준비하고 제공하는 일방적인 교육으로 끝나고 말았던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문제들 때문이었다. 긍정적 요소로는 운영 프로그램에 기존 교육체계로서는 보기 드문 몇몇 독특한 운영방안이 있었다. 게릴라 수업과 같은 것은 기존 대학교육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방법이다. 다소 생소하고 혼란스러운 점도 있겠지만 실험적인 차원에서 돋보인 프로그램이었으며 작자와 비평가들이 치열한 논리 싸움을 전개토록 한 연계교육(또는 오픈수업)이 있는데 현장에서 실전비평의 방법, 작가의 어푸로치 방법, 컨셉의 놀리적 타다성 등, 작가와 비평가의 시각적 차이와 그에 따른 담론들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지켜보고 또한 질문에 참여하는 실질적 교육이라는 점에서 개성 있는 프로그램이었다고 말해질 수 있다.

 

창작 워크숍의 미래적 방향

-대학교육이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나아가도록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도 대안교육이 필요하다. 창작교육의 생산성은 시장성이고 국제성이다. 그것은 내수용이 아닌 수출용이고, 국내가 아닌 국제적 마인드를 갖게 하는 것이다. 기존 교육제도가 이루지 못한 것을 대안교육의 장에서 이뤄내는 차별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대안교육의 교육적 목표는 제도권 학교교육이 준비하지 않거나 관심마저 없는 분야, 그렇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사진분야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적 방향은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운영 시스템, 즉 강사들의 일방적인 지식전수가 아니라 실제적인 교육,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교육, 사진문화의 근간이 되는 교육적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사진교육- 어제의 발자취

-사진교육이라는 것은 대학에서의 교육, 즉 제도권 교육으로서 공교육을 말한다. 한국의 사진교육은 60년대 중반 서바벌예술대학 사진과로부터 시작한다. 기술성이 강조됐던 때인지라 그에 부합한 교육이 이루어져 사진기술 향상에 도움이 되었고, 깊은 이론교육은 아니었으나 샂ㄴ 이론교육이 이루어졌기에 찍는 것 밖에 몰랐던 우리 사진계에 이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60년대의 사진교육이 기술 중심에 얽매어 있었다면 70년대의 사진교육은 기술성을 바탕으로 한 창작성을 강조했던 교육이었다. 사진의 대중화가 이루어져 콘테스트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사진교육도 이에 부합하여 창작교육이 큰 주류를 이뤘다. 80년대의 사진교육은 70년대와는 확연히 구분되었다. 무엇보다도 산업인력을 위한 2년제 사진대학이 증가했으며 실기 중심인 전문대학이 사회적인 요청에 따라 사회 각 분야에 전문 인력을 공급했다. 그러나 80년대 사진교육은 분명 잘못된 방향이었다. 미래를 내다보지 않았다. 분야별 전문성을 강조하여 심도 있는 이론교육과 고도의 기술 결정적인 실기교육이 이루어졌으나, 점차 미래의 사진수요를 예측하여 변화의 길을 걸었던 대학은 보이지 않았다. 모든 대학들이 지금도 알 수 있듯이 획일화된 프로그램과 방향을 가지고 있었다. 90년대에 교육은 80년대의 교육을 그대로 답습함으로써 교육의 위기를 초래했다. 우리가 보았듯이 60년대의 교육은 기술 중심의 교육, 70년대의 교육은 창작 중심의 교육, 80년대의 교육은 전문가를 양성하는 전문교육이었다. 그래서 사진전공자들이 전체 사회가 요규하는 대로 그 책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그러나 90년대 사진교육은 점차 사회적 욕에 부응하지 못했다. 매체의 발달과 정보자료의 일반화로 그 동안 사진전공자들이 누렸던 기술적인 노하우의 프리미엄이 없어졌으며, 그나마 비교우의를 지켰던 전문이론마저도 보편화됨으로써 사진전공자로서의 위상 및 경쟁력은 크게 떨어졌다.

 

사진교육- 무엇이 문제인가

-사진교육이 위기라고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관점에서 논의될 수 있겠지만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 첫째 사진을 전공해도 취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고, 둘째 정작 필요한 부분은 합당한 전공자가 없다는 것이며, 셋째 그 어느 대학도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하거나 대처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진을 전공해도 취업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살펴보면 이는 사진전공자를 위한 일자리가 없는 경우와 일자리가 있는데도 경쟁력이 없어 취업을 못하는 경우다. 일자리가 없거나 부족한 경우는 디지털 분야를 제외한 종래의 아날로그 사진산업이 사양산업에 들었기 때문에 현재 전세계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추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일자리가 있는데도 취업을 못하는 경우라면 더욱 문제다. 그에 대한 문제점들을 유추한다면 대학이 학생들에게 경쟁력을 심어주지 못한경우와 잘못된 교육체계를 가졌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사진전공자들이 경쟁력이 없다는 것은 대학의 전문교육이 경쟁력이 없다는 말이다. 잘못된 교육체계 때문에 취업을 못한다면 그것은 일자리에 맞지 않는 교육을 배웠거나, 인접 교육과 연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교육-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우리의 사진교육이 위기라고 했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당장 눈앞에 안보이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그에 따른 지대한 노력과 준비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일례를 들어 사진전공자들이 선생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먼저 '사진교육학과'를 만들거나 '사진교육전공'을 개설하여 교육부와 초.중등교육기관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적절하고 합당한 교육체계를 가져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미술교육과처럼 교육능력을 공인 받을 수 있는 교육체계가 따라야 하고, 사회로부터 교육자격에 대한 신임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무엇보다도 교육 정상화를 위한 토대가 만들어져야 하며, 올바른 교육적 토대위에서 전공 및 커리큘럼 체계를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이를테면 4년제 대학은 학부제로 나아가야 한다거나, 학생 수를 적정 규모로 조정하는 일, 또 2년제 전문대학과 차별화 된 교육적 특성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 그것들이다. 따라서 우리 사진대학들이 새로운 도약을 희망한다면 학부제의장점을 인식해야 하고 그런 토대 위에서 다음과 같은 교육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사진 대학간의 전공 프로그램이 확실히 구별되어야 한다. 사회 사진대학은 전혀 특성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다. 사회구조가 변하고 문화의 다양성이 그 어느 때보다 요청되는 지금, 우리의 사진 프로그램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순수, 보도, 다큐멘터리, 광고라는 거의 똑같은 전공 프로그램에 기초하고 있다. 전공 프로그램들이 경쟁력 있고 특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학제간의 전공 분배가 있어야 한다. 즉 2년제 전문대학과 4년제 대학, 혹은 개방대학, 산업대학과 대학원은 각기 서로 다른 교육 프로그램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 대학교육의 문제점은 2년제 교육이건, 4년제 교육이건 모든 사진교육이 실기 위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 따라서, 혹은 학제에 따라서 실기 중심, 이론 중심, 관리 중심, 경영 중심으로 특성화되어야 하는데, 어느 대학도 실기 중심 교육에서 벗어날 꿈을 못 꾸고 있는 것이다.

 

변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일부 종합대학들이 미술학과에 '사진 전공'을 개설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몇몇 명문 예술대학들도 사진학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미 고지된 일로서 교육정책에 따라 2002년부터 모든 대학들이 학과 설치를 자율적으로 운용하게 되면 수도권 한두 군데 사진학과를 제외하고는 전체 사진학과들이 미달사태를 우려하게 될 것이며, 또한 제도권 밖의 사교육이 대학교육만큼 질적으로 향상되어 만약 명문대학 미술전공자들이나 인문, 사회계열 전공자들이 그곳에서 배출된다면 사진학과 졸업자들은 직업전선에서 그들과 경쟁자로서 만나게 될 것이다. 사진교육의 근간은 어떠한 경우라도 대학교육이어야 한다. 제도권 교육이 언제나 교육의 주체여야 하며, 사교육은 그것의 보완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공교육이 흔들림 없이 자리잡을 수 있고, 또 교육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우리 사진대학들이 똑같은 교육,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일관한다면 대학교육의 위기는 뻔한 것이고, 결국에 가서 서로 자멸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작가, 작가주의

-"사진에서 작가란 누구인가?"를 말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비판적 성찰이 요구된다. 이 물음이 결국 "한국사진에 진정한 작가, 진정한 작가주의가 있는가"로 연결되고, 종국에 가서는 "없다, 새롭게 태어나자!"로 마감하기 때문에 비판적 성찰과 시각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작가, 작가주의를 거론하는 것은 우리의 작가, 작가주의의 그 맹목성과 유희성과 비생산성을 비판하고자 함이며, 그러한 작가, 작가주의가 21세기에는 일소되어 새로운 작가, 새로운 작가주의가 탄생되어야 하는 역사적 당위성을 말하고자 함이다. 예술에서, 그 어느 분야보다 일관성과 개인성이 요구되는 예술에서 단체의 힘이 강조되는 잘못된 시스템을 운영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단체의 힘을 통해서 작가, 작가주의를 지향하려는 부류들이 많다. 21세기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작가, 작가주의는 그래서 작품을 소비시키는 작가 체제로 가야 한다. 생산과 소비를 통해서 지속적인 작업을 하게 되는 소비-재생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미래의 한국사진은 이처럼 작품을 소비시킬 수 있는 작가들의 탄생과 출현이 있어야 새로운 사진문화가 창출되고, 또 사진시장이 형성되며, 그렇게 될 때 한국사진은 지금보다 훨씬 국내외적으로 역량이 과시된다. 그렇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과거와 다른 제작방식, 재생산 구조를 가져야 한다. 어느 나라에서나 작품의 판매는 곧 작가에 대한 하나의 평가기준이 된다. 소비되는 작가만이 한 나라의 문화 재생산 구조를 효율화시키는데, 아무래도 사람들이 누군가의 작품을 갖고 싶어한다는 것, 소장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작가에 대한 자연스러운 하나의 평가이고, 작가자신과 문화 인프라를 튼튼히 하는 요체가 된다. 한국사진도 이렇듯 과거와 다른 작가, 작가주의 정신을 표방할 때 지형도가 새롭게 바뀔 것이다. 한국사진의 수준도 과거와 다르게 높아졌고 그 작가 층도 넣ㅂ어졌다. 지난 10년 간 한국사진이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던 것은 단체의 힘보다는 개인의 역략이 강화되고 발휘된 경우이다. 물론 호응 받거나 작품이 소비되는 작가는 일부이거나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대다수 작가들은 아직도 소비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한 약조건 하에서도 개인전을 계속하거나 그룹전에 참여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청되는 것이며, 또 그렇기 위해서 과거와는 다른 작가정신, 작가주의를 요구한다.

 

역사, 역사주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역사, 역사주의는 바로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며, 우리의 지난 역사를 극복하려는 의지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한국사진의 역사가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도약의 발판으로서 한국사진의 대외적인 위상정립이며, 다른 하나는 교육으로서 대내적인 우리 사진의 역사적 정립이다. 대외적인 사진의 위상정립은 120여 년의 역사성을 지렛대로 삼아 좁게는 인접 예술분야, 넓게는 일반 대중, 또 좁게는 군내, 넓게는 세계에 한국사진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과 그 역동성을 인식시키는 발판으로 삼자는 것이다. 역사적 정립 또한 대학에서 한국사진사가 정당한 커리큘럼으로서 자리잡아야 한다는 떄도 있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은 중요하며, 이는 전적으로 새로운 역사, 역사주의로서 미래지향적인 작가의 몫이 될 것이다.

 

제도, 그 밖의 한국사진의 논점들

-한국사진의 제도는 크레 교육, 화랑, 저널, 시장으로 나눠진다. 어떤 사람이 작가가 되고자 했을 때 맞닥뜨리게 되는 사회적 힘들이 제도이다. 대학에 들어가 사진작가로서 교육을 받고, 졸업하여 화랑에서 전시를 하며, 전시에 대한 저널로부터 평가를 받는 것, 저널의 평가에 따라 시장에서 소비가 이루어지는 것, 또 그 소비에 따라 작가로서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 뿐만 아니라 위상이 훗날 역사화되는 것이 작가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인 힘으로서 제도라는 틀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가운데 '교육', 특히 대학 사진교육의 패러다임 변화가 중요하다. 우리에게 요청되는 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보다 특성화되고 전문적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한편 '화랑'의 문제는 현재 우리로서 전무하기 때문에 특별히 어떤 패러다임이 요구되지 않지만 장차 사진박물관이 들어서거나, 사진전문화랑이 본격적으로 문을 열게 되면 이 부분도 작가와 관계된 제도로서 미래지향적인 패러다임이 요청될 것이다. 사진저널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청된다. 작가 발굴에 더 적극적이어야 하며, 작가를 알리는 데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진이론가, 사진평론가들을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터전이 되어야 하며, 전시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한국사진의 조직 및 단체들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청된다. 사진영상학회가 정식으로 인가를 받아 이제 사진교육계도 바야흐로 복수 학회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양 학회간의 선의의 경쟁을 통한 수준 높은 연구와 논문이 체계를 이룰 때 한국사진의 이론 및 담론문화가 지금보다 더 활성화 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움의 조건

-새로움의 조건, 그 변혁의 씨앗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자기 색깔을 드러내는 것, 자기의 깃발을 높이 치켜드는 것일지 모른다. 작가는 작가대로, 전시는 전시대로, 평론은 평론대로 제각기 자기의 샐깔, 자신만의 깃발을 드러내는 일이 변혁의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움의 또 다른 조건은 다양한 중심과 다양한 작가가 존재하는 가운데 세계화이다. 미래사진의 풍요로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풍성함이란 결코 양적 가치가 아닌 질적 가치로서, 그렇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내부로부터 필터링이 되는 매서운 비평이 존재해야 하고 작가는 이것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한다. 새사람이란 결코 질 높은 사진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사처 주고 상처받았던, 미움 주고 미움받았던 어제의 모습도 아닌, 꺠끗하고 맑고 순수한, 그래서 때묻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1999년 5월, 미국의 사진잡지 [PDN]은 미래 세계사진을 짊어질 30대 이하의 작가 30명을 선발한 적이 있다. 미래 사진을 점치고자 했던 <30 Under 30>에 우리 작가들이 한 사람도 끼진 못했으나 개의치 않는다. 우리의 역량이 그들의 역량에 못지 않기 때문이고, 그 자유분방함과 역동성도 결코 뒤지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사진의 방향을 주도하고 있는 70년대 세대들의 문화성향은 이전 세대들과 큰 차이가 나며, 그들의 예술적 자유로움과 테크놀로지의 숙련성은 이전 세대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들의 문화성향과 매체의 순응성은 곧 현대사진의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게 될 것인 바, 최근 우리의 사진에서도 그러한 현상이 잘 나타나고 있다. 젊은 작가들은 문화와 환경, 성과 테크놀로지에 초점을 맞추고 그 이면의 사회적 역기능을 조명하고 있다. 또  그릇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쉽게 순응한다. 사회 문화적 적응력이 대단히 높고 표현력도 뒤어나다. 이러한 특성들이 그들의 힘이다. 남은 것은 이제 실천이다. 실천이 배제된 희망은 공허할 뿐, 변혁의 꽃망울을 터트릴 수 없다. 우리에게 남겨진 실천들, 요컨대 교육의 정초를 다시 세우는 일, 한국사진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일, 국제화의 초석을 다지는 일, 지적기반을 튼튼히 하는일, 작가정신을 일깨우는 일, 사진의 생산과 소비를 일상화하는 일 등등, 하루 속히 해야 할 일이고 반드시 성취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한국사진의 희망이다.

출처 : 사진모임 2008
글쓴이 : 이창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