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현대사진의 쟁점 2008. 4. 4
50년대 -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려는 새로운 정신은 전통에서 일탈하여 개성 있는 퍼스널 다큐멘터리 사진을 출현시켰고, 또한 고답적인 형식의 벽에서 일탈하여 새로운 형식주의 사진을 태동시켰다. 1946년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와 모홀리-나기의 죽음은 주체의 죽음이었고, 주체의 죽음은 새로운 독자, 새로운 세대들의 출현을 가져왔다. 로버트 프랭크와 윌리엄 클라인은 형식미학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파격적인 형식과 개인의 자율성을 보여준다. 예술 표현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했던 소형 카메라를 사용했으며, 초점에서 벗어난 사진, 흔들린 사진, 전경, 중경, 원경이 무시된 사진, 구도를 파괴한 사진, 거친입자의 사진 등 전통적 형식 미학 하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카메라 워크를 구사하고, 또한 사회에 대한 생각도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투사했다. 50년대의 사진을 컨템퍼러리 사진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후 사진가들이 전통적인 형식과 내용으로부터 자율성을 가졌다는 것이고, 또한 사진을 아우르는 제도 역시 그 자율성과 독자성을 적극 수용했음을 말한다. 전통 사진미학의 해체는 곧 개인의 자유로운 철학과 사상의 발현으로 나타났으며 개인성과 주체성이 드러난 이 시기의 사진에 대해 역사는 '공적 언어에서 사적 언어로', '집단적 발언에서 개인적 발언'으로 설명하고 있다.
60년대 - 탈 매체적 성향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으며 팝 아트는 사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표현의 유용성에 있어서는 컨셉추얼 아트, 즉 개념미술이 더 실재적이었다. 개념미술은 전통적인 예술 대상성에 대한 반발 혹은 부정에서 출발한다. 그들이 주장한 새로운 예술의 대상성은 다름 아닌 지금까지의 예술의 주제, 소재, 대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탈 예술대상성주의'였으며 사진이 개념미술과 만났던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언어적 코드로서 사물을 이해하는 텍스트 자체였고, 세상을 언어적 풍경으로 생각했던 개념미술가들의 색다른 재현의 방법론이 60년대 사진에 새로운 방법론으로 자리잡았다.
70년대 -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가 연속으로 되어 있는 사진형식인 시퀀스 포토는 사진에 나타난 개념사진의 주요 형식이며 무의식의 세계를 재현할 뿐만 아니라 사진이 숙명적으로 받아들였던 시간과 공간을 극복하고 관념적이고 초현실적인 문제까지 재현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무의식을 표현하고 보이지 않는 사회현상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시나리오가 필요하고, 허구적 공간이 필요하고, 인위적 연출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눈앞의 현실, 실제 상황만을 찍어야 한다는 한계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상당한 표현의 확장이었다. 숙명처럼 받아들여졌던 지나간 것,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장차 사진의 표현영역이 얼마나 확대될 수 있는가를 예견한 대표적 사례였으며 수동적인 재현의 틀을 벗어나 점점 능동적인 현대미술의 재현의 틀 속으로 빨려 들기 시작했다.
80년대 - 포스트모더즘을 배후로 하여 강력한 매체의 확장을 시도했다. '뉴 웨이브' 사진양식이 그것이며, 뉴 웨이브 양식의 출현으로 사진은 더욱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는 구성사진이란 이름으로 알려진 이 새로운 사진형식은 우리 나라에서도 소위 '찍는 사진'과 '만드는 사진', '스트레이트 포토'와 '메이킹 포토'라는 헤게모니 싸움을 일으킬 정도로 80년대 사진의 쟁접이었다. 뉴 웨이브 양식은 찍기보다는 만들기를, 현실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인위적 구성을, 꾸밈없이 다가서기보다는 철저히 연출하여 표현하는 것을 선호한 방법이다.
-80년대의 맹위를 떨친 구성사진의 모습
ㆍ '자기표현' - 전략적으로 시나리오를 짜고 연출하고 의상까지 책임
ㆍ '내러티브(이야기)' - 무대 구성은 작가가 치밀하게 무대를 구축하고 여기에 사람을 올려 연극, 영화와 같은 방법으로 서사화 하는 방법
ㆍ '미니에츄어' - 특정 인형들을 통해서 극영화 형태를 취하는 방법
ㆍ '스틸라이프' - 정물을 통해서 이미지를 구축하는 방법
도용미학의 저충주의
-현대사진에 있어 종합적 절충주의는 미술과 마찬가지로 크게 두 가지 모습을 띠고 있다. 이념의 절충성과 장르의 절충성이 바로 그것들인데, 여기 이 장르의 절충성에는 사진만이 갖는 독특한 양식적 절충성도 내포되어 있다. 80년대 현대사진 역시 미술과 마찬가지로 포스트모더니즘이 강세를 보였던 사회적 상황이었다. 이 이론에 따른 사진을 포스트모더니즘 사진이라고 규정했으며, 당시 포스ㅡ 모더니즘 사진 중에서 가장 관심의 표적이 됐던 미학적 담론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의 패스티쉬에서 출발한 '도용미학'이었다. 도용미학은 모더니즘 미술의 형식성을 의도적으로 도용함으로써 모방과 표절행위를 도덕적으로 비난한 모더니즘의 지고한 미학적 규버에 반기를 드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도용을 통해 모더니즘 미술의 절대적 가치기준인 창조성을 해체시킴으로써 모방이나 표절이 문제시되지 않았던 모더니즘 이전의 미술로 환원시키려는 의지로 받아들여졌다. 롤랑 바르트와 발터 벤야민의 이론을 근거로 만들어진 포스트모더니즘의 표절미학, 즉 독창성 해체 전략으로서 표절미학은 문학의 경우 혼성모방의 양식으로, 미술에서는 표절의 양식으로, 그리고 사진에서는 도용의 양식으로 나타난다. 세리 래빈은 바로 그 포스트모더니즘의 독창성 해체 전략을 도용미학으로까지 발전시킨 대표적 예술가였다.
헤일맨-시의 풍자적 표절미학
-타인이 표절한 작품을 재차 표절하는 전략으로 잘 알려진 작가이며 그녀의 도용미학은 세리 래빈과는다르게 비교적 아방가르드의 풍자적 패러디에 가까운 미학성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이 구사했던 표절에 대해 또다른 의미에서 표절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표절의 표절'이라는 풍자적 패러디를 탄생시켰고, 과거 포스트모더니즘이 채택했던 해체 전략을 또 다른 각동에서 해체하려는 이념적 담론이다. '패미니즘 대 페미니즘' 역시 이념적 절충주의에서 바라본 아방가르드적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적 페미니즘의 충돌이다. 이렇듯 도용미학의 절충주의는 바로 아방가르드적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던적 페미니즘의 절충을 말한다.
척 사무엘즈의 자각적 표절미학
-주체의 소멸을 의미하는 세리 래빈의 'After'를 차용하여 자각적 표절이라는 또다른 모습의 도용미학을 전개했다. 그의 사진을 자각적 표절미학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사무엘즈가 남성 사진가로서 여성에 대한 일종의 반성적 의미를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모델들을 성적 대상으로 취했던 점을 반성하는(자각하는) 뜻에서 남성 사진가인 자신이 직접 원작처럼 여성 앞에 성적 대상이 됨으로써 여성의 성적 이미지를 해체시키는 것이다. 가급적 최대한으로 원작에 가깝게 모델의 자세, 콘트라스트 그리고 톤에 신경을 썼다는 제작방식 때문에 형식적 절충주의로 해석된다.
조지 듀보스의 창조적 표절미학
-듀보스의 창조적 표절미학에 있어 먼저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 착안했던 이념적 절충주의, 또는 미학적 절충주의에 초점을 맞춰보면 듀보스가 과거의 사진들에 나타났던 특정 이데올로기를 현대에 맞게 재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에 먼저 눈이 간다. 그의 표절미학은 오늘날 여성들이 처한 육체적 노동(직업)과 그 가치에 대한 현대적 해석이다. 아우구스트 잔더가 1920년대 당시 동시대 인간(남성)들의 육체적 노동과 가치 그리고 그 계급성(독일사회)을 평가했던데 대해, 듀보스는 바로 그 잔더의 사진을 오늘날 똑같은 노동 조건에서의 여성의 실체와 그 육체적 가치를 평가하려 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조지 듀보스의 표절미학은 창조적 절충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그가 미학적 목적과 상업적 목적을 구분하지 않고 자유스럽게 타인의 작품을 표절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 시대의 한 예술적인 단면이라고 한다면 이것 역시 상업적 절충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페미니즘 미술의 전개
-미국 페미니즘 미술의 역사는 문학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3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갖고 있다. 제1기는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후반까지를 말하며, 이때의 주요 이론을 보면 '여성예술가와 위대성의 기준'에 몰두한 가장 초보적인 페미니즘 담론을 갖고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미술사에서 많은 부분이 삭제 다하고 수많은 여성미술가들이 제외도며 그리고 그렇게 많은 여성들의 미술작품들이 명예를 훼손 당할 이유가 과연 어디에 있었는가?"를 미술사적으로 검토한 것이었다. 페미니즘 제1세대 미술가들이 여성의 감수성과 여성적 이미지에 관심을 갖고 남녀의 생물학적 성적 차이를 타파하고자 했다면, 80년대 제2세대 페미니즘 미술가들은 보다 정치적이고 급진적인 색채를 띠면서 남성사회의 구조적 모순성에 집중했다. 이들의 방법론은 크게 두 갈래인데 하나는 여성이 겪는 조건과 경험의 차이를 밝혀내는 '문화 페미니즘'이며, 다른 하나는 여성이 남성 중심의 체계 속에서 재현되는 방식과 사회 속에 자리하는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타입(편견)을 분석하는 '사회적 페미니즘'이었다.
페미니즘 사진의 전개
-미국 페미니즘 사진은 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과 깊게 연루된 코니 해취, 바바라 크루거, 루이스 롤러, 세리 래빈, 마사 로슬러, 신디 셔먼, 제니 홀저, 사라 찰스위스, 로나 심슨, 낸골딘 그리고 도리 시피스와 같은 페미니스트 사진가에 의해 전개되었다. 우드맨의 경우자신의 몸을 통해 '성의 정치학'이라는 70년대 핵심적인 페미니즘 미학을 실행에 옮겼고, 월크는 퍼포먼스를 통해 여성의 실질적인 육체, 즉 욕망의 대상으로서 여성의 몸을 직접 관객에게 드러내는 재현미학의 표본을 보여주었다. 특히 우드맨의 셀프 포트레이트를 통해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의 관계를 직시하면서, 남성/여성의 사회적 위치,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80년대 들어 열푸처럼 번진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는 미국 페미니즘 사진의 황금기를 열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 사이에 이론적, 실체적 차이가 있듯이,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간에도 구별해야 할 요소가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진과 페미니즘 사진을 구별하는 최적의 방법은 일차적으로 양쪽의 주제, 이슈, 담론에서 그리고 이차적으로는 전개하는 '이데올로기와 전술전략'에서 찾아야 한다. 80년대 제2기 페미니스트들은 사진을 가장 강력한 표현무기로 삼았다. 세리 래빈은 유명한 남성사진가들의 사진을 작품집에서 도용함으로써 예술제도내에서 남성의 권위와 특권 그리고 독창성 붕괴를 꾀했고, 바바라 크루거는 텍스트 포토, 즉 이미지와 텍스트를 통해 남성중심 사회에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제도적 폭력과 차별에 항거했으며, 신디 셔먼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성적 대상물로서 여성의 이미지를 불식시키고자 노력했다. 제니 홀적의 경우는 시적 텍스트를 통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언어들이 사지에서 어떤 의미로 생산되고 구축되는지를 분석했으며, 마사 로슬러는 사진과 비디오를 통해 오늘날 여성들이 어떤 방식으로 남성들에 의해 성폭력화 되는가를 드러냈다.
페미니즘 사진의 최근 비병
-1995년 미국 템플대학 출판사에서 풀간한 [리프레밍:새로운 미국 페미니스트 사진]은 오늘날 미국 페미니즘 사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출판물이다. 지금까지 다루지 못했던 페미니즘 사진과 카테고리를 설정한 점과 최근(90년대) 페미니즘 사진의 성격과 방향 그리고 중요한 담론들을 파악할 수 있도록 고려한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제3기에 속하는 90년대 페미니즘 사진은 과거에 의었던 타고난 성적 차별이나 남성의 성(남근주의)에 대한 열등적 인식 대신, 여성 신체에 대해 철저한 인식과 주체적 자아실현을 탐색하고 있다. 다이안 뉴마이어가 페미니즘 사진의 장르를 6가지로 카테고리화 한 '젠더 스페이스', '국내문제', '자아구축' '탈 식민지 유산', '신체적 자각', '성적 갈망'이 있다. 80년대 페미니즘 사진을 주도했던 세력이 백인, 중산층 뉴욕이나 캘리포니아 거주 등 '로얄 페미니스트'였다면, 90년대 페미니스트들은 열악한 경제적 여건, 흑인, 인디안, 히스패닉, 아시안, 라틴계 출신의 소수민족 페미니스트들이다. 이들의 주장과 이슈들은 자연스럽게 유색인종과 소수민족의 문제점을 일차적으로 거론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90년대 페미니즘 사진의 또 다른 특징이라면 '호모섹스'와 'AIDS'에 관한 밀도 있는 관심을 들 수 있다. 동성간의 사랑과 섹스도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이자 가치 있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그것이며 또 하나 페미니즘 이슈에는 '여성 에이즈' 문제가 있다. 90년대 페민니즘 사진은 70년대나 80년대와는 달리 사회 문제를 보다 세분화시키거나 개인을 집단 아이덴티티와 연계시키고 있는데 이것들이 바로 90년대 페미니즘 사진의 가장 큰 미학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Digital Pictorialism
-'디지털 픽토리얼리즘'은 가장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21세기 사진의 모습이다. 최근 사진 경향을 보아도 디지털 영상을 추구하는 매니아들의 수가 증가하듯 복고풍 영상을 추구하는 매니아들도 따라서 증가하고 있으며 첨단화되어가는 기계적 이미지에 맞서서 더욱 인간적인 이미지, 더욱 인간적인 냄새를 복고풍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다. 디지털 사진 예찬론자들은 전통적 현상, 인화 프로세스가 필요치 않은 디지털 사진이야말로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고, 그리고 환경을 생각하는 정신이야말로 사진을 통해 보다 나은 삶을 지향하는 사진가들의 최소한의 도덕심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디지털은 해방구인가?
-'디지털 픽토리얼리즘'이란 컴퓨터 합성과 같은 디지털 테크닉에 의해 과거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엽까지 풍미했던 '회화주의 사진'의 또 다른 모습이다. 컴퓨터에 의한 자유자재의 이미지 합성과 전용, 혹은 변조야말로 과거 19세기 픽토리얼리즘이 추구했던 미학적 방법론과 별반 차이가 없는 새로운 미학적 포장물이라는 뜻이다. 디지털 픽토리얼리즘이 그러나 과거 픽토리얼리즘과 명백히 구별되는 점은 그것이 특정분야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업광고, 포토저널리즘, 다큐멘터리, 포트레이트, 그리고 랜드스케이프에 이르기까지 사진의 전 분야에 공히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디지털 픽토리얼리즘이란 종래 '사진=진실'이라는 진위성 문제나 "전자화상은 은화상을 영원히 능가할 수 없다"는 화질의 문제를 뛰어 넘어, 오직 최적의 이미지 구현을 위해 선택과 수단에 부여한 디지털 사진의 미학적 담론이다.
다다에서 디지털까지
-1994년 간행된 [아파추어] 특집판은 <변형:전자시대에서의 사진>을 핵심이슈로 하고 있다. [뉴 이미지]의 저자이기도 한 티모시 드럭크리의 글 '다다에서 디지털까지'를 전면에 내세워 특집판을 구성한 이 사진 전문지는 컴퓨터 사진 몽타주, 다큐멘터리 픽션, 환영, 가상풍경, 그리고 디지털 미술관에 이르기가지 디지털 시대를 맞아 전개되고 있거나 앞으로 전개될 상황들에 대해 주도 면밀하게 해부하고 있는데, 특히 앞으로 전자시대에 있어 제기될 사진의 미학적 문제까지 소홀함 없이 다루고 있다. 드럭크리는 글을 통해 '디지털미디어는 모든 기호체계를 변화시킨다'로 압축하고 있으며 과거 다다의 몽타주가 그랬던 것처럼 디지털이란 매체도 컴퓨터 합성과 같은 전자 몽타주에 의해 우리의 인식체계는 물론 종래 시각예술의 기호체계를 변모시킬 것이라고 했다. [아파추어]의 라이벌이라고 말해지는 사진 전문지 [See]의 이슈 중에는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장차 우리 앞에 도래할 디지털 마인드 혹은 디지털 사고에 관한 것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환은 결국 인간의 사고를 'on/off', 'yes/no', 'right/wrong'처럼 오직 수단과 방법, 혹은 시작과 끝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체계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사진의 문제
-사진이라는 전통적 '타임'이미지에서 디지털이라는 '이벤트'이미지로의 전환은 우리로 하여금 두 가지 난제에 봉착케 한다. 하나는 전자문화 속의 이미지 해독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장 루이 코몰리가 언급했던 사이버 공간에서의 이미지의 광란에 관한 것이다. 인터넷이나 디지털 사진을 포함하는 이른바 컴퓨터에 의한 사이버 공간, 가상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실제적 논의가 먼저이고, 이어 그 가상세계 혹은 사이버 공간에서 재창조되는 이미지를 어떻게 미학적으로 수용할 것인지가 그 다음에 오는 문제라 할 수 있다. 디지털 다큐멘터리 사진이란 컴퓨터 합성을 통해 현장에 있지 않았으면서도 마치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인식되게 하는 사진, 혹은 실제 현장과 분명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실제 현장 이상의 생생하고 충격적인 현장성을 가즌 사진을 일컫는데, 오늘날 디지털 다큐멘터리 사진은 역사적 현장에 있음을 최우선으로 삼고 그것을 통해 진실과 정의를 말하는 저널리즘 포토에 도전하려 하고 있다. 사진은 발명 순간부터 테크놀로지와 관련을 맺어왔고 또한 필연적으로 진보적인 정신과 연계할 수 밖에 없다. 필름 없이사진 찍는 카메라, 복잡한 프로세스 없이 즉석에서 기존 사진과 화질차이 없이 손에 쥐게되는 사진, 이것이 이상적이라고 한다면 사진은 결국 디지털로 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사진의 숙명이다.